지칠줄 모르는 탐욕 그래서 넌 행복하니

? 10대 누드모델에 집착하는 40대 남자
? 그녀를 탐할수록 더 커져가는 공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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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프로이트가 말하는)가 필요하다. 그게 없는 인간은 날뛰는 성기와 콩알만 한 뇌를 가진 한심한 존재일 뿐이므로.

마흔은 되어 보일 법한 한 남자가 있다. 철학 교수 마르탕(샤를르 베르링). 아내와 이혼한 지 6개월, '섹스'에 굶주린 그는 신경쇠약 직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안정하지 못하고 이곳저곳 헤매던 그는 어느날 밤 한 노인의 술값을 대신 내주고 누드 그림 한장을 얻게 된다. 왠지 모르게 이 그림의 모델이 됐던 소녀 세실리아(소피 길멩)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첫 섹스를 나눈다.

6월 17일 개봉하는 '권태'(원제 L'Ennui)는 아네스 자우이(타인의 취향)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생활 밀착형 대사와 이를 통해 인물의 '진짜' 감정에 접근하고 있는 편이지만, 앞의 두 감독의 영화에 비하면 끝맺음이 강해 보이는 인상이다.'생활 밀착형'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여주인공 세실리아의 외모 역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 마르탕을 자신에게 중독시키며 나락으로 빠뜨리는 이 '팜므파탈'은 그 전형에서 한참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풍만함이라는 10대의 과잉 성숙이 유난히 눈에 띄는 이 여자는 지적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백치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마르탕의 표현을 빌리면 '말을 해도 소리가 안 날 정도'로 따분한 여자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입보다 성기의 움직임이 더 풍부한' 여자다. 타박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이는 그녀가 마르탕에게는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툭하면 '끝내려는 중'이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마르탕은 자신도 모르는 새 그녀에게 점점 빠져든다.
쓰려고 했던 책도, 하려고 했던 강의도 이제 마르탕에게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영화의 유머는 이 부분에서부터 시작한다. 성적인 소유욕으로 눈앞에 '뵈는 게' 없어진 이 남자는 지적이면서도(남자는 교수다) 유치하게, 그리고 집요하게 여자에게 매달리고 이는 계속 무책임한 표정만을 짓고 있는 여자와 대비되며 은근한 웃음을 준다.

마르탕이 섹스에 집착하면서 세실리아에게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바로 또 다른 남자가 있다는 것. 어깨도 좁고 머리는 텅 비어 보이지만 새 남자 '모모'에 대한 세실리아의 행각이 집요한 마르탕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 없다. 세실리아는 결국 제안한다. '두 사람 다 사랑하면 안되나요.'

영화가 슬퍼지는 것은 사랑(혹은 섹스)에 빠진 남자의 집착과 절망이 날카롭게 사실적으로 그려진다는 데 있다. '애인이 생겼는데 왜 전보다 그녀를 더 원하게 되는가', '내가 따분한 사람이어서 여자가 바람을 피울까', 주위 사람들에게 묻던 그는 결국 세실리아를 소유할 힘을 잃어 간다.

칸과 베를린 등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프랑스 감독 세드릭 칸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18세 관람가.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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