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의 기세가 등등하다. 박근혜 정부 비선(秘線)의 국정농단 의혹을 담은 청와대 문건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자 각계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 관련 기사를 악의적으로 쓴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기소돼 한국 법정에 서게 된 터라 일본 측의 불편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청와대 비선 논란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된지 이미 오래다.

그 핵심 인물로 지목돼온 정윤회씨가 청와대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비서관 3명을 포함, 대통령 측근들과 정기 회동, 청와대 동향과 국정을 논의했다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퇴시점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사퇴설 유포를 지시한 대목도 나온다. 아무런 공직도 맡지 않았지만 그의 위세가 대단한 듯 그려져 있다.

왕조시대의 음습한 권력 다툼을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로 풀어쓴 야사(野史)를 떠올리게 한다. 문건에 등장한 '십상시(十常侍)'란 단어에서 묘한 뉘앙스가 풍긴다. 2000년 전 중국 후한 영제(靈帝) 당시 국정을 쥐락펴락했던 10명의 환관들을 빗댄 말로 들린다. 어린 황제는 그들의 농간으로 주색에 빠져 국정을 등한시한 인물로 그려진다. 결국 10상시들은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 등에 의해 일망타진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에서 왜 '십상시 논란'이 제기되는가. 청와대 문건이 외부 유출된 것도 문제이려니와 그 바탕엔 권력실세 암투의 악취까지 감지된다. 대통령 동생 박지만 회장과 정윤회씨의 갈등설이 여러 갈래다. 박 회장을 미행하던 오토바이 기사의 배후 인물이 정윤회씨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번 문건 작성 시점이 '미행 사건' 바로 직후라는 점이 주목을 받는다.

청와대가 이번에도 문건 내용이 찌라시 수준이라고 대응하고 나섰지만, 그간 의혹이 한 둘 아닌 까닭에 오히려 부풀려지는 분위기다. 비선의 인사 개입설에 이어 청와대 서류를 싸들고 청와대 밖으로 나간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검찰 수사 결과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영삼 정권 당시에도 차남 현철씨가 '소통령'으로 행세하면서 국정에 개입하다가 감옥 생활을 해야 했고, 김대중 정권 때엔 '아들 게이트'로 시끄러웠다. 이명박 정권 때는 '영포회'라는 비선조직이 민간사찰로 국정을 농단했고 대통령의 친형 상득씨가 '만사형통대군'으로 군림하다 쇠고랑을 차야만했다. 신재민·박영준·최시중 등이 줄줄이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권력의 사유화(私有化) 문제는 반드시 척결돼야 할 대상이다.

'인사 실패'도 그런데서 비롯됐다. 역대 어느 정권이 집권 1년 반만에 총리 후보자 3명이나 청문회도 해보지도 못한 채 사퇴한 적이 있었던가. 대통령의 뜻으로 포장되면 객관적인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하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낙하산 인사 시비가 여전하다.

국정운영 스타일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솔직하게 터놓고 소통하면서 국민과 공감대를 쌓는 자상한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장관이나 수석비서관조차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하기가 힘들다는 소리도 들린다. 구중궁궐에 스스로 갇힌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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