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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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 연산군은 매일 기생들과 향연을 가졌다. 심지어 여염집 아낙을 겁탈하거나 사대부의 첩, 양인의 아내와 딸, 자신의 친족과 상간하는 등 패륜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전국 팔도에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를 파견, 아름다운 처녀를 뽑았는데 운평, 계평, 채홍, 속평, 부화, 흡려 등 여러 단계의 호칭으로 분류해 관리했다. 그 수가 1만명에 이르렀다. 이들 가운데 제일 나은 여인을 '흥청(興淸)'이라고 했다. 연산군과 동침하여 성적으로 만족시키면 ‘천과흥청’이라 부르고 시원찮으면 ‘지과흥청’이다. 또 원각사를 기생양성소로 개편하고, 성균관(오늘날 국립대학)도 유흥장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흥청들과 놀아나다가 망했다고 해서 백성들 사이에서 흥청망청이란 말이 생겨났다.

▶왕실 기생들은 일곱 군데로 나뉘어 살았다. 또한 음식 공급을 위해 호화고를 두었고, 의복과 화장품 공급을 위해 보염서를 설치했다. 왕실 기생을 유지하기 위해 쓴 이 어마어마한 비용은 모두 백성들의 혈세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입 한번 뻥긋하지 못했다. 궁궐의 일을 누설한자는 부모까지 중죄로 처했고, ‘흥청’이 아이를 가질 경우 그 남편의 목을 베고 아이는 생매장했다. 실제로 연산군이 내린 형벌은 잔혹했다. 손바닥 뚫기, 담금질 쇠로 지지기, 가슴 빠개기, 뼈 바르기, 마디마디 자르기, 배 가르기, 뼈를 갈아 바람에 날리기 등이었다. 일례로 중국 북경에 가서 '수박'을 구해오라는 엄명을 그르친 김천령은 사지가 찢겨져 죽었다.

▶연산군의 바통을 이어받은 중종의 최대 파트너는 조광조였다. 그는 연산군 시절의 폭정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어 도덕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의 개혁정치는 민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민초들은 그가 나타날 때마다 말 앞에 엎드려 '우리 상전이 오신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그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를 시기하는 무리는 더욱 늘어났다. 결국 이상정치의 실현은 5년 만에 막을 내렸다. 어찌나 억울한 죽음이었던지 사약을 마셔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한 사발을 더 마시고 죽었다고 한다. 이게 정치다.

▶광기는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돌파구라고 한다. 하지만 정상으로 가기까지의 삶은 피폐하다. 우린 이번 선거에서 모두 3952명을 뽑는다. 이들이 흥청망청이 될지, 흥성흥성(興盛興盛)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전히 민초들은 토지로 밭을 삼아 혀 빠지게 일하고, 여전히 벼슬아치는 백성을 밭으로 삼아 등짝을 벗겨 먹고 있다. 결론은 났다. 흥청을 뽑는 것도, 흥청을 없애는 것도 주권을 잡은 우리들의 몫이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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