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경쟁력 상실로 줄줄이 과수농을 포기하는 농민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명목상으론 작목 전환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미래가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농가부채다 뭐다 해서 가뜩이나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민들이 발등에 떨어진 개방의 파고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걱정부터 앞선다.

충남도가 FTA 체결로 피해가 예상되는 시설 포도와 노지 복숭아, 시설 키위 농가 등을 대상으로 폐원 신청을 받은 결과 포도의 경우 재배면적 161㏊의 무려 53.4%인 86㏊가 폐원을 신청했다고 한다. 복숭아와 키위 폐원 신청도 각각 22%와 13%나 됐다. 과수농가 줄 파산의 신호탄인가. 이미 예상했던 일이긴 하나 막상 닥치고 보니 충격파는 대단하다.

굳이 칠레산뿐만이 아니라 수입산 농산물이 대형 할인매장은 물론 동네 구멍가게의 진열장을 버젓이 점령한 지 오래다. 특히 칠레산 포도의 경우 값싸고 질 좋은데다 출하기마저 국내와 겹쳐 사실상 당할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농산물을 애용하자고 호소한들 애국심이 통하는 세태도 아니다. 이러다 토종 과일이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타결된 지 10년이 지났고 FTA 역시 4년을 끌다 체결됐다. 이때부터 차근차근 대책을 세웠던들 포도·복숭아 나무를 뽑아내는 뼈아픈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앞에 닥쳐 수습하려면 기회비용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과학적인 대처로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과수농가의 회생방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포도에 비해 복숭아나 키위의 폐원신청이 그나마 적은 것은 아직 경쟁력이 있다는 증거다. 지금부터라도 대체작목 개발과 품종 개선에 전력한다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입엔 우리 농산물이 최고'라는 말이 있듯이 입맛에 맞는 품종 개발로 당당히 맞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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