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치하에서의 부친의 헌병 경력 구설수에 휘말렸던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의장 부친을 기억하고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어, 신 의장으로선 심적 고통이 컸을 것이다. 우리는 부친의 허물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연좌제 의미로 신 의장의 사퇴를 이해하지 않는다. 이 보다는 신 의장 자신이 그간에 표출했던 부친 관련 이력의 명암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고 본다. 애초부터 드러내 놓고 인정할 것은 인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여당의 대표로서는 적절치 못한 처신이었다. 신 의장의 심정을 고려하면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사 정리가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하여 여야간에 신경전이 한창이지만, 우리는 연좌제와 특히 정치적 영향력이 청산과정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점을 거듭 지적해 둔다. 가뜩이나 현실의 고달픔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는 분위기하에서, 굳이 과거로의 회귀가 이뤄져야 하느냐는 자조적인 지적도 팽배해 있다는 점을 부연해 둔다. 기왕에 친일 관련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전문가와 학계에 맡기는 것이 중립적, 객관적 관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감정적 차원의 한풀이와 보복심리가 개입되어선 안 된다.

신 의장 사퇴 이후 정치권은 당분간 더 시끄러울 것 같다. 열린우리당은 예상치 못했던 일로 하루아침에 물러난 신 의장의 사례가 역사 청산의 고삐를 당기는 지렛대로 활용해선 안 된다. 벌써부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도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지만, 이는 연좌제의 의미를 부여하는 후진적인 발상이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그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다. 과거사 청산과정에서 여야는 할 말을 하고 따질 것은 따지면서 진솔하게 나서야 한다. 진실 규명을 통해 화해와 통합의 기회를 찾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신 의장의 사퇴는 향후 역사 청산 과정이 얼마나 험난할지를 보여 주는 예고에 불과하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