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문 사회부장

‘초록은 동색’. 끼리끼리 논다는 한국특유의 ‘패거리’ 문화를 빗댄 말이다.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정치판이 어지럽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새 지도부 구성에 이어 대선가도를 향한 셈법이 분주하고, 통합진보당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대립각이 첨예하다. 국회가 개원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정치혐오증이 심화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말을 앞두고 터져나온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실세’들의 비리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방통대군’과 ‘왕 차관’으로 불리던 그들의 추락으로 정부의 도덕성에도 심각한 치명상이 가해졌다.

이처럼 처참하게 망가질 수 있는 것인지, 권력무상이라는 말로도 황당함을 형언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어디를 둘러봐도 온전한 데가 없는 듯 하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헌법 제1조를 귓등으로 들은 탓이다.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를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 여긴 오만이 빚은 자업자득이다. 국민의 소리에 귀막고 눈 감은 사필귀정에 다름아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소득층 국민들의 상실감도 극에 달하고 있다. 들추면 들출 수록 억대의 뭉칫돈이 오고간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하루 몇 만원에 날품 팔며 근근히 생활하는 이들은 평생 만져볼 수도 없는 돈이 아니던가.

권력을 등에 없게 되면 그런 돈을 떡 주무르듯 주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 자칫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 들지 않을까 암담할 뿐이다.

그들이 챙긴 금품수수액도 문제지만,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모습에 더욱 기가 막힌다.

그들은 수감되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한테 죄송하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대통령에게 죄송한 것인지, 아니면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한 몫 단단히 챙겨 대대손손 무위도식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얘기인지 도무지 속내를 알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전 위원장이 강조했던 좌우명은 '천망불루'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疏而不漏·하늘의 그물은 눈이 굉장히 넓어서 성근 것 같지만 죄인을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를 줄인 말이다.

악한 사람이 악한 일을 할 경우 당장 벌을 받거나 화를 입지 않지만, 결국 언젠가는 자기가 저지른 죄값을 치르게 된다는 말이다. 자기가 뱉은 말처럼, 하늘의 성긴 그물에 갇힌 그가 어떤 생각으로 수의를 입고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의 보좌관으로 대통령 형제와 인연을 맺은 이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등을 거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박 전 차관 역시, 사필귀정의 의미를 진작에 새겼어야 했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스캔들'로 불리는 CNK 주가조작 연루 의혹, 포스코 회장 선임 개입 의혹, 민간인 불법 사찰 및 은폐조작 의혹 등 그가 받고 있는 혐의를 보면 썩은내 진동하는 뒷골목 이야기를 다룬 한 편의 추리영화를 보는 듯하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작금의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해법은 탈각과 자구의 몸부림 뿐이다.

일련의 말세적 불상사를 온전히 털어내지 않는다면 민심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을 향해 치닫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裡覺)·가고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는 속에 깨닫게 된다’는 격언을 가슴깊이 새겨봄직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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