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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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8)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조참판 김감(金勘)이 어질고 학문이 있으니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품계를 올려서 성균관지사(成均館知事)를 제수하고자 하는데 소인들 생각에는 대군(大君)이 김감의 집에 나가 우거하고 있기 때문에 특은(特恩)을 베푸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근래에 김감 같은 인물은 조정에 드물다고 보오."

왕은 세자를 백부 월산대군 집에 맡겨 기르다가 끝내 백모 승평부부인을 증(蒸)하였다는 불미스런 추문을 얻은 것이 가책이 되어 왕자를 신하의 집에 맡겨 기르는 것이 예삿일이지, 다른 뜻은 없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둘째 아들 창령대군 인(仁)을 이초참판 김감의 집으로 보냈던 것이다.

"전하의 말씀과 같이 김감은 자품을 뛰어서 직을 제수받더라도 지나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옵니다."

성준의 대답이었다.

"대사헌의 생각은 어떠하오?"

왕은 이자건에게 다시 물었다.

"예, 김감이 어질고 학문이 있는 것은 전하의 말씀과 같사옵니다마는 가선대부는 동지(同知=동지성균관사)를 제수하는 것이 준례(準例)이온데 자품(資品)을 뛰어 성균관지사에 제수한다면 작(爵)과 상(賞)이 차례를 건너뛰게 될까 염려되옵니다."

이조참판은 종이품, 가선대부이니 같은 가선대부인 동지로 바꾼다면 모르되 정이품 자헌대부인 성균관지사에 제수하는 것은 준례가 아니라는 완곡한 반대의 의사였다.

"하하하, 경은 대간이 아니랄까 보아서 기어이 그런 말을 하오?"

왕은 웃어넘겼으나 김감을 승진시켜 줄 생각이었다.

신하들과 기생 광한선 내한매의 권주로 대취한 왕은 연회석이 좁다면서 갑자기 문정전(文政殿) 바깥뜰로 연회석을 옮기라고 명하였다.

동짓달 추운 밤에 대비전에서 잔치를 하다가 갑자기 바깥으로 나가자고 하는 것은 아마도 너무 취하여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신하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고, 내시와 궁녀 기생들은 바깥뜰로 연회석을 옮기느라고 법석을 피웠다.

왕은 군신간의 예의를 잃고 시정의 주정뱅이처럼 추태를 부린 것은 문정전 바깥뜰로 연회장을 옮긴 후의 일이었다.

정재(呈才=대궐 안의 잔치)에 처용무가 거의 빠지는 일이 없는데, 이날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왕이 워낙에 처용무를 좋아하므로 전악(典樂)이 미리 처용무를 출 무동(舞童)들을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왕은 어김없이 처용무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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