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 ?
?
? ?
?
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7)


밤의 연회장이 때아닌 백일장처럼 되었다.

미리 시제(詩題)를 알고 왔던 듯이 즉석에서 일필휘지하는 사람, 눈을 감고 시상에 잠긴 사람, 왕의 양옆에 달라붙은 채 이름이 시제(詩題)가 된 기생 광한선과 내한매를 부신 듯이 바라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윽고 맨 먼저 시를 다 짓고 붓을 던진 사람이 내시를 시켜 글장을 왕에게 바치게 하였다. 이어서 여기 저기서 시샘하듯 다투어 글장을 바쳤다.

왕은 친히 글장을 하나씩 펴들고 촛불에 비추면서 읽어 보았다.

기생 광한선과 내한매를 저희들 이름을 글제로 지은 시들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왕이 읽고 있는 글장을 양옆에서 넘겨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왕은 별로 신통한 시를 발견하지 못한 듯 쾌(快)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글장만 자꾸 바꿔 보고 있었다.

"광한선이와 내한매라는 아름다운 기명(妓名)을 글제로 주었는데 경들의 시는 하나같이 풍류와 운치가 모자라오. 이래 가지고는 호피를 상으로 줄 수가 없는데."

왕은 마지막 글장까지 다 읽어보고 나서 실망한 듯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진귀한 호피가 욕심이 났거나 왕에게 아첨을 할 생각으로 시재(詩才)를 발휘해 본 승지 이하 관원들은 계면쩍고 낭패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과인이 호피를 아껴서 하는 말이라고 오해들 하지 마오. 여봐라, 호피를 일곱 장 가져오라!"

승명한 내시가 창덕궁으로 달려가서 호피 일곱 장을 날라 왔다.

왕은 영의정 성준을 비롯한 정승 세 사람에게 한 장씩 내려주고, 그 다음에 대사헌 이자건과 도승지에게 각각 한 장씩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장은 기생 광한선과 내한매의 이름을 글제로 시를 지은 사람 중에서 두 사람을 골라 나누어 주었다.

배면(背面)이 갈색 바탕에 얼룩덜룩한 황색 반문이 있고, 하면(下面)에 순백색 바탕에 흑색 무늬가 있는 호피는 얼른 보아도 진귀한 보물이었다.

그것을 하사받은 사람들은 감격하여 사은하기가 바쁘고, 다른 사람들은 구경이라도 하려고 야단법석이었다.

유량한 풍악 소리와 기생들의 현란한 춤이 어우러져 연석은 요란하고 어지러웠다.

군신 사이에 분주히 술잔이 오갔다.

"영상!"

왕이 성준을 불렀다.

"예, 전하."

성준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허리를 굽혔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