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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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6)

뜻하지 않은 어명이 떨어지자 신하들은 귀를 의심하면서 서로 묻고 되묻느라고 수군수군하였다.

"전하, 대사헌(大司憲) 신 이자건(李自健)이 아뢰오. 대체로 시를 읊는 것은 제왕이 숭상할 바가 아니온데 하물며 창기의 이름을 글제로 하여 시를 지어 바치라 하시옵니까? 만일 이러한 일을 사책(史冊)으로 쓴다면 후세 사람들이 이 시대의 군신을 어떻게 평하겠습니까? 불가하옵니다."

이자건은 취중에도 결연히 반대 의사를 말하였다.

"그래서 경은 시를 못 짓겠다는 것인가?"

"예, 황공하오나 죄를 받겠사옵니다. 창기의 이름을 글제로 시를 짓는 일은 고금에도 없는 일이옵니다."

"시를 잘 짓는 사람에게는 호피(虎皮)를 한 장씩 내려 주려고 하였는데 대사헌은 호피를 갖기 싫은 모양이군.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 지어 바치고 싶은 사람은 지어바치고 싫은 사람은 그만 두도록 하라."

왕이 신하들에게 기생의 이름을 글제로 하여 시를 지으라고 하는 것은 아닌 게 아니라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비록 주석에서 군신이 기생을 끼고 수작을 하고 즐길망정 기생의 이름을 글제로 하여 시를 남긴다는 것은 자존자대(自尊自大)하는 사대부들에겐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사헌 이자건의 결연한 발언은 그 자리에 모인 사대부 모두의 한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왕이 진귀한 물건을 미끼로 유혹하자 동요가 일어났다.

"전하, 주서(注書) 이희보(李希輔) 아뢰옵니다. 신은 내한매라는 글제로 시를 지어 바치겠사옵니다."

말석에서 기생 차지도 못한 채 동료와 함께 어사주를 얻어 마시던 승정원 주서 이희보가 무슨 수나 생긴 듯이 맨 먼저 나섰다.

"이희보에게 지필묵을 갖다 주어라."

왕이 말하자 여기저기서 서로 눈치를 보며 너도나도 하고 지필묵을 청하였다.

처음에는 승정원 당하관들이 그랬으나 내시와 궁녀들이 지필묵을 날라 오자 승지들까지 휩쓸려 너도나도 지필묵을 달라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반대한 이자건을 비롯한 사헌부 관원들과 영의정 성준을 비롯한 정승들은 취중에도 사대부의 체모를 지키겠다는 듯이 끝내 지필묵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승지 이하 관원들은 음식상 밑의 비좁은 바닥에 종이를 펴놓고 먹을 갈고 붓을 잡았다. 음식상마다 촛불이 켜져 있었으나 상 밑은 어둡고 그림자가 어른거려서 서로 밝은 곳을 차지하려고 자리를 옮기고 다투는 작은 소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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