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속으로]③ 장애인복지시설 새터공동체 박병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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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드득, 뽀드득’

올 겨울들어 가장 많은 눈이 세상을 덮은 지난 5일 오전.

발목까지 올라오는 눈밭을 헤치며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동(冬)장군의 기세가 옷깃을 꽁꽁 여미게 만드는 날씨라 누군가를 만난다는 설렘까지도 차디찬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흩어져버릴 것 같았다.

저멀리 초라하게 세워진 단층 건물 외엔 주변은 온통 산과 들판, 그리고 눈 뿐이었다.

대전에서 1시간여 차를 몰아 찾은 충남 금산군 추부면 신평리.

맑고 차가운 공기가 코 끝을 시리는 시골에서도 산 중턱에 위치한 건물이 우리가 찾던 그곳이었다.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올 즈음, 건물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그가 보였다.



정갈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에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그는 그저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칠 법한 ‘아저씨’ 같았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따뜻한 그의 웃음보다 더욱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그는 팔과 다리의 거동이 불편하고 앞을 잘 보지 못했다. 그는 2급 장애인이었다.

“안녕하세요.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적이 드문 날씨에 만난 낯선 손님이 반가웠던 걸까.

우렁차게 외치는 그의 첫 인사는 한 겨울 추위도 몰아낼 태세였다.

충청투데이가 연재중인 ‘사람속으로’의 세 번째 주인공은 새 희망을 꿈꾸며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복지시설 ‘새터공동체’를 운영하는 박병민(46) 목사였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사람

건물 안은 여느 주택과 다를 바 없었다.

커다란 거실에 몇 칸의 방이 보였고 주방, 화장실, 책장, TV, 라면박스…

다만 다른 건 방과 거실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실엔 대략 7~8명의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장애인, 혹은 노인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와중에 20대로 보이는 한 명의 청년이 옆에 다가와 ‘헤헤’하고 밝게 웃었다.

“지체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라고 박 목사가 설명하자 청년이 더욱 밝은 미소를 띄우며 언뜻 알아듣기 힘든 인사를 건넸다.

거실 한 쪽에 마련된 식탁에 앉자 청년도 옆에 쪼르륵 다가와 앉았고 이야기가 피어났다.

“1999년 7월 16일 이곳에 터를 잡았어요. 보통 노인·장애인 시설이 들어선다고 하면 지역주민들이 싫어하죠. 제 고향이 이곳인데 고향분들의 도움과 이해가 없었다면 시작도 못했을 거예요.”

논산 벌곡에서 파송 목사로 복지 관련 일을 하던 박 목사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무일푼이었던 그가 ‘과한’ 욕심을 낼 수 있었던 건 “천막이라도 치고 살면 되지”라고 응원하는 동갑내기 부인 진선민 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복지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곳 저곳 발품을 팔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로 지쳐갈 즈음 고향의 한 지인이 반가운 소식을 들려줬다.

주변에 있는 기도원이 운영상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됐는데 위치가 열악해 그대로 방치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지니고 있던 그는 한걸음에 달려왔고 건물을 매입했다.

인가되지 않은 가건물이었기 때문에 저렴하기도 했지만 환경미화원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의 자금지원이 없었다면 버거웠을 일이었다.

이후 대전, 무주, 이천, 군포 등 전국 각지에서 장애나 나이를 이유로 세상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모여들어 어느덧 10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얼마전 인가된 새 건물을 짓고 열악했던 가건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국 새터공동체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준 사랑이 만든 결실이에요. 사랑을 만드는 건 사람이니까요.”

◆장애인을 돕는 장애인

평생 남을 도우며 산다는 건 비장애인에게도 힘든 일이다.

장애가 있는 팔과 다리로 인해 움직이기 어렵고 조금 멀리 떨어진 사물은 제대로 식별하지도 못하는 박 목사로선 더욱 고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장애를 갖고 있다보니 도움을 많이 드리지 못하는 것, 그게 늘 우리 가족들에게 미안해요.”

그는 복지시설은 건강한 사람들이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은 육체적인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있어 비장애인들이 일해야 더욱 배려깊은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슴 한 편을 찌르는 가르침이었다.

“어려운 사람을 더 많이 데려오고 싶은데 그런 한계 때문에 못한다”는 그는 “그래도 비장애인인 아내가 목욕, 청소 등 많은 부분을 해결해주고 있어 이나마도 운영이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장애를 타고났던 박 목사는 학창시절 남들 앞에 잘 나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장애를 갖고 있다보니 항상 움츠러들었고 그런 만큼 활발하게 남을 이끄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컸다. 처음 목사란 직업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런 동경 때문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사랑을 전파하는 목사가 대단해 보였어요. 그래서 대전신학대를 선택하게 됐죠. 대학을 가면서 성격을 바꾸고 싶은 마음에 자취를 하게 됐어요.”

대학에 입학 후 사람들과의 만남이 점점 활발해진 그는 차츰 자신보다 못한 소외계층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전 목동, 성남동, 용운동 등 빈민지역 아동들을 찾아가 공부방을 운영했고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충북 옥천에 있던 한 교회에 근무하면서 부인 진선민 씨를 만났다.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진 씨의 모습에 따뜻함을 느꼈던 그는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결심했지만 그 후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진 씨 부모의 반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전 장애가 있고 아내는 비장애인이니깐 반대하는 건 당연했죠. 그래도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아내에 대한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어렵게 이뤄낸 사랑인데 요즘은 표현을 잘 못해 미안해요.”

◆“새해 소원은 우리 식구들 비행기 태우고 제주도 가는 것”

대부분의 복지시설이 그렇듯 새터공동체도 운영상 여러 어려움에 처해있다.

10명의 식구들을 거느리고 있지만 주말에 오는 자원봉사자를 제외하면 일손이라곤 박 목사와 진 씨가 전부다.

매일 거동이 불편한 10명의 식구를 단 둘이서 씻기고, 달래고, 먹이려면 힘겨울 수밖에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상주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절실하지만 무료봉사자가 아니라면 지금의 재정으론 꿈도 못꿀 일이다.

새터공동체를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선 최소 월 400~500만 원의 운영비가 필요하지만 지원금이라곤 군에서 나오는 연간 100~200만 원이 전부다.

나머지는 가족들의 기초생활수급금과 교회단체의 후원금으로 겨우겨우 메운다.

“근근이 생활하는 거죠. 식구들 데리고 야외활동도 나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전혀 못해요. 매일 안에서만 생활하는 거죠. 영화라도 한 번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박 목사는 “집에 가고 싶다”고 투정부리는 노인들을 바라볼 때 가장 가슴이 아파온다고 한다.

이곳에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과 체험활동을 마련하지 못해 그렇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새해 소원은 남다르다.

“우리 가족들 비행기 한 번 태워주는 거예요. 다같이 제주도 놀러가서 한바탕 뛰어놀게 하는 것, 그래서 상처난 가슴 훌훌 털어내게 하는 것. 너무 큰 소망인가요?(웃음)”

진창현 기자 jch8010@cctoday.co.kr

사진=홍성후 기자 hippo@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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