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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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부 帝王 無恥
狂歌亂舞(24)


건국 이래로 불교를 이단(異端)으로 몰아 억압해 온 유신들과 나라의 힘을 빌어 불교를 보호 육성하려는 왕비들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있게 마련이었다.

두 대비와 유신들이 사이에 낀 왕의 입장은 미묘하고 곤란한 것이었다.

유신들 편을 들어 억불(抑佛) 정책을 쓰는 것은 모두 대비에 불효가 되고, 대비들 편을 들어 불교를 보호 육성하는 것은 국시(國是)와 다름없는 유교 정신에 배치되는 것이었다.

왕은 처음에는 불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대비들의 뜻을 맞추었으나 차츰 유신들의 강력한 송소에 부딪치면서 봉양(奉養)한다는 구실로 불사(佛事)에 소요되는 포곡 따위를 수시로 대비전에 보내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중을 뽑는 승과(僧科)를 정지하고 사찰을 중수(重修)하지 못하게 하여 사찰이 불법(不法)으로 점유하고 있는 전지(田地)와 인민(人民)을 찾아내게 하는 등 억불정책을 썼다.

두 대비는 왕이 불공을 드릴 재원은 충분히 대 주면서 그렇게 불교를 핍박하는 것이 불만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대궐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있는 인가를 철거하면서 인수대비의 원찰인 인왕산의 복세암까지 철거대상이 된 것은 여간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두 대비는 창경궁으로 옮겨간 후 우선 잔치를 베풀어 왕을 위로하고 복세암 철거령을 거두고 다른 억불정책도 완화해 줄 것을 청하기로 하였다.

어느 날 밤 창경궁 내전으로 초대되어 간 왕은 그가 사랑하는 기생 광한선을 비롯하여 내한매, 소남아 등이 미리 와 있는 것을 보고 입이 함박만큼이나 크게 벌어졌다.

초대받은 사람은 왕 혼자만이 아니었다.

삼정승은 물론 사헌부, 승정원 관원들이 다 초대되어 너른 창경궁 내전이 비좁을 지경이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서열이 뒤지는 관원들은 남빈청(南貧廳)에 따로 연석을 마련하고 모이게 하였다.

"오늘 밤에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군국기무(軍國機務)를 촐람하시느라 영일(寧日)이 없으신 주상전하의 노고를 치하 위로하고, 아울러서 주상전하를 보필하시느라고 주야로 수고가 많으신 여러 중신들을 함께 위로하고자 함이오. 군신이 서로 사양 마시고 대취하여 밤새도록 동락(同樂)하시기 바라오."

인수대비가 연회를 마련한 뜻을 말하였다.

왕이 먼저 인수대비와 자순대비 앞에 나아가 헌수하고 회배(回盃)를 받아 마셨다.

악공들이 풍악을 아뢰고, 기생과 궁녀들이 뒤섞여 지분향 냄새를 풍기며 연석 사이로 주효를 나르느라고 분주히 왔다 갔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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