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렬 청주대·한국음식인문학 연구원장

공산무인 수류화개라더니 인간의 관심 없이도 계절은 바뀌고 봄꽃은 스스로 피어난다. 서로 더 잘났다며 표를 달라고 굽신거리던 정치인들은 당락이 확정되는 순간 얼굴을 바꿀 터이지만 흐르는 물과 피어나는 꽃들은 한 번도 우리를 속이거나 실망시킨 적이 없다.

마침 선거 다음 날이 삼짇날이어서 속세의 소음과 다툼을 벗어날 겸 가까운 이들과 화류회를 열었다. 혜원 신윤복의 ‘연소답청’에는 진달래 피어난 화창한 봄날 음식과 술을 준비하고 기생을 말에 태워 답청을 나서는 선비들의 풍류가 담겨 있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 예전 같은 나들이는 언감생심이다.

귀촌한 지인의 한옥 잔디마당에 모여 술 빚는 A 선생은 준비한 두견주와 탁주를 항아리 채 걸러내고, 음식 하는 B 씨는 화전을 만든다. 쌀가루 반죽에 분홍빛 진달래를 곱게 얹어 기름 두른 철판에서 부쳐내는 화전은 맛도 맛이려니와 눈 호강이 우선이다. 참꽃 진달래의 색과 향을 담은 두견주는 달콤하고 진득한 맛이 일품인데 술잔마다 띄운 한 송이 붉은 꽃이 흥취를 돋운다. 한껏 흥이 오르면 시인은 시를 읊고, 명창은 사랑가를 부르고, 춤꾼은 삼짇날 돌아오는 제비의 날렵함으로 소맷자락을 휘젓는다. 먹 듬뿍 머금은 붓이 화선지 위를 구르며 쳐내는 한 그루 매화를 더해 모두는 풍류가객이고 신선이다.

음력 3월 3일로 3이 겹친 중삼일인 삼짇날은 답청절이라고도 하는데 9월 9일 중구절에 남쪽으로 떠났던 제비가 돌아오고 봄꽃이 만개하여 세상에 활기찬 기운이 넘치는 날이므로 봄나들이에 딱 좋은 날이다.

예로부터 삼짇날에는 화전을 비롯하여 양지 녘에 돋아난 부드러운 쑥으로 만드는 쑥떡, 소나무 껍질의 안쪽 달콤하고 부드러운 송기와 쏙을 함께 버무려 만드는 고리떡, 녹두 가루를 반죽하여 살짝 쪄낸 다음 가늘게 썰어 빨갛게 우러난 오미자 물에 넣고 꿀을 풀고 잣을 띄워 마시듯 먹는 화면과 각종 봄나물을 무쳐 먹었다. 술은 역시 두견주가 주인공이지만 며칠 앞뒤인 청명주나 그냥 탁주여도 좋다. 천지에 밝은 기운이 가득한데 굳이 주종을 가리겠는가?

두견주에 화전 그리고 봄나물 몇 가지가 전부인 화류회였지만 발랄한 봄의 기운과 마음의 여유를 얻어 삶 속으로 되돌아왔다.

두견주의 고장 충청도에서 삼짇날 풍류 문화가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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