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현 사단법인 대전민예총 이사장

대전시는 지난 3월 17일 입법예고를 통해 대전시 위원회 정비를 위한 조례 일괄개정안을 공고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에 따르면 일괄개정 대상 조례에 의거한 35개 위원회 중에는 구성된 지 5년 미만인 위원회가 11개로 31%에 이른다.

위원회의 설치 목적은 각 분야별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해 좀 더 현실에 부합하고 실질적인 문제해결과 정책과제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위원회가 사실상 식물위원회가 됐다는 것은 법률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각 장르의 당사자들도 무의미하다고 보았거나 위원회 제도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비효율적으로 운영이 됐다면 상식적으로 위원회가 제대로 작동이 되는 방향을 찾는 것이 먼저이다.

법정 위원회조차도 이런 상황인데 거버넌스나 협력위원회와 같은 문화예술현장과의 소통과정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거버넌스가 문제인 이유는 기존의 거번먼트라는 정부 주도의 문제해결 과정이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운영 과정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정책 결정 과정의 참여 보장과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의 강화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김상철의 ‘문화행정과 거버넌스 진단, 그리고 과제’에 따르면 많은 경우 재정집행 과정이 전문가의 영역이며 또한 관료들의 경험적 지혜를 통해서 구축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영역’이라는 주장을 수용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와 같은 관점은 오해이거나 왜곡에 가깝다.

재분배 과정으로서 재정과정은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며, 그 과정에서 누구를 참여시키고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편익을 제공할 것인가라는 과정에 의존한다.

문화정책에서 거버넌스를 강조한다는 것은 바로 문화정책의 정당성 문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문화예술 정책의 경우, 보조사업의 구조를 통해서 직렬화돼 있다는 것은 납세자인 국민들이 보조사업자로서 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정책은 다른 어떤 사회정책에 비해 갈등이 많을 수 밖에 없으며 사업 집행에 있어서 타당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이는 필연적으로 적절한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경우 장르별로 특화된 보조사업 구조는 예술인과 예술단체를 수평적으로 연결시키기 보다 공모·지원사업을 중심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이 개별적으로 직렬화되는데, 수식계열화 방식으로 구조화된다.

즉 예술지원정책의 목적인 예술인이 관련 부서의 보조사업자로 등장하고 사업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공적 주체가 된다.

이렇게 되면 정책목표가 곧 정책수단이 되는 이상한 구조가 된다.

결국 현행 보조사업 구조는 예술인들의 당사자성을 거세하고 지속적으로 지원구조의 쳇바퀴 속에 머물도록 만드는 구조적 힘이다.

이미 ‘팔길이원칙’이라는 개념이 문화 분야에서는 상식으로 통할만큼 보편화됐지만 그만큼 현실에서 작동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문화 행정에서의 독립성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앞으로 문화예술 분야는 거버넌스의 확대와 현장 중심의 문화정책 구조로 재구성돼야 한다.

더 많은 권력과 권한을 현장과 예술인들에게 나눠주고, 이러한 힘들이 모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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