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옥 청주복지재단 상임이사

얼마 전 생활고에 시달리다 온몸이 마비된 아버지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22살 청년에 대한 보도가 있었다. 80대 남편이 치매를 앓던 부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접했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들이 보도되면서 복지안전망의 허술함을 질책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족이기에 환자를 간병하고 돌보는 것이 마땅하지만 간병의 고됨과 경제적, 심리적 압박감은 돌보는 가족을 ‘간병살인’이라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법적 처벌과는 별개로 사면초가의 위기에 직면했으나 어떠한 공적 제도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 복지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요즘 가족은 대부분 2~3인으로 구성된 소규모 가족이다. 맞벌이 부부와 자녀, 이혼 등의 사유로 한쪽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거나 노인들의 경우 부부 세대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가족들은 구성원 중 한명이 심각한 질병에 걸릴 경우 가족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특히 가장인 부모가 아플 경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청년 자녀들은 경제적으로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의지할 곳이 없어 삶이 더욱 피폐해지게 된다.

‘아빠의 아빠가 됐다’는 청년돌봄자로 산 9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저자는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도 그렇지만 막상 기초생활보장제를 신청했을 때 기준이 까다로워 힘들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가족의 간병과 돌봄, 경제를 동시에 떠안아야하는 청년돌봄자 문제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막막한 상황에 처해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공적인 안전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적절한 경제적 지원책과 공공간병제도, 돌봄서비스 등 실질적인 지원이 마련되고 또한 그 접근이 쉬워야한다.

더불어 초고령화 사회로 가면서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고령의 배우자를 간병하거나, 60, 70대 자녀가 80, 90대 노부모를 간병해야하는 상황도 빈번할 것이다. 노인세대가 경제적 빈곤 상황에 치매나 뇌졸중 등 노인성 질환으로 돌봄이 필요하게 될 경우 가족 간의 갈등과 어려움은 곧장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사회보장제도, 노인돌봄제도가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는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이다.

2020년 지역사회통합돌봄제도 발표 당시 의료와 지역사회복지를 연결하는 중간 코디네이터 역할이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병원사회복지사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병원 퇴원을 앞두고 여러 상황을 체크하여 공공복지전달체계로 연결해주는 중간지원체계의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다.

읍면동 주민복지팀이나 통합사례관리팀에서 대상자를 일일이 찾아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단수나 단전으로 위기가구를 찾아내는 것도 파악이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일 수 있다. 지금처럼 ‘신청주의’를 핑계 삼아 당사자가 신청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사회안전망의 구멍을 메우지 못하여 지속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보건과 복지가 연결고리를 갖춰 병원에서 퇴원하면서 바로 지역사회복지시스템으로 연결되는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이 사회안전망을 좀 더 촘촘하게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 간병과 돌봄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을 위한 실질적인 공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간병살인’과 같은 처참한 비극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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