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관희 영동 학산고 교사

학교 뒷산에서 매미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곧 방학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고3 교실의 아이들은 마냥 기쁘고 신나지는 않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다.

"앞이 안 보여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며 아이들은 울상짓는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나의 여름방학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

학력고사 세대의 입시 일정은 12월 초순 시작되어 1월 말이 되어서야 끝이 났기에 고3 여름방학은 학창시절 누릴 수 있는 마지막 방학이었다. 그러니 짧은 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야만 했다. 몇 주간 힘들게 용돈을 모았고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도 받아 밤기차 여행을 실행했다. 여정은 한여름 밤 시작됐고 여섯 시간을 넘게 달리는 기차 안에서부터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기대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새벽녘 어둠 속의 부산역에서 우리가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해 아는 것도 준비한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터넷이 없었으니 여행 후기도 첨단 예매 시스템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막막함은 잠시였고 드넓은 바다를 보니 수험생이라는 현실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런데 바다에 발을 담그려는 순간 안내 방송이 나왔다. 태풍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니 입장객 모두 대피하라는 것이다.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우산을 나눠 쓰고 풀이 죽어 있던 우리는 부산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역에 도착하니 거센 태풍 속에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기운이 났다. 알고 있는 게임을 소환해서 놀았고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바다가 보고 싶어 왔는데 바다보다 서로를 더 많이 봤다며 웃었다.

"얘들아,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교훈은 말이야~"하니 한 아이가 "여행할 땐 계획을 세우라는 거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이제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

미성년인 여학생들에게 밤 기차를 타라고 할 수도 없고, 돈 없는 여행을 떠나보라고 할 수도 없는 시절이지만 이제 말해 주어야겠다.

미래라는 것은 알 수 없어 두려운 길이지만 한 발 내디뎌 걸어가 보라고. 계획했던 즐거움 대신 깜짝 놀랄만한 기쁨이 찾아올 수도 있는 여정이라고. 계획에 없던 배움이 찾아올 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나아가 보라고.

방학(放學). 사전적 의미는 학기가 끝난 뒤 잠시 수업을 쉬는 일이다. 수업은 쉬지만, 공부를 놓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혹자는 경험이 최고의 교사라 말했다. 인생은 알고 보면 무수히 많은 경험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며 배움은 언제 어디서든 구하고자 하는 이에게 일어나는 것이니 무엇에서든 의미를 찾으며 공부하는 방학을 보내라고 말해 주어야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