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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지곡. 박일규 서예가 제공

춘추시대 초나라의 오자서에게는 신포서(申包胥)라는 절친한 벗이 있었다.

그러나 훗날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이 간신 비무기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자 오자서가 복수의 화신(化身)이 돼 오나라로 망명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그 후 오자서는 오나라에 들어가서 공자(公子) 광(光)에게 자객을 추천해서 오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게 했는데 그가 춘추오패(春秋五覇) 중 한 사람인 오나라의 합려왕이다.

이렇게 해서 오나라의 중신이 된 오자서는 부형(父兄)을 죽인 초나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오나라 군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절치부심 기회를 노렸다.

오자서가 초나라를 탈출할 때 만난 신포서는 그에게 개인적인 원한으로 조국을 배반하지 말라며 오자서가 초나라를 망하게 하면 자신이 반드시 나라를 부흥시켜 놓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드디어 오자서에게 부형의 원수를 갚을 기회가 돌아왔다.

초나라는 비무기 등 간신들이 국정을 농락하는 바람에 부패해지고 내정이 혼란해진 반면 오나라의 국력은 몰라보게 강해진 격이다.

그는 합려를 설득해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로 쳐들어가서 순식간에 초나라의 수도인 영까지 점령했으나 그의 철천지원수인 초평왕은 이미 죽어 버렸고 그의 아들인 소왕은 변장으로 도망치고 없었다.

그러자 오자서는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꺼내 채찍질을 삼백 번이나 해서 분풀이를 했다.

노자서의 만행에 격분한 신포서는 진나라의 애공을 찾아가서 초나라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신포서는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연이어 이레 동안이나 진나라의 조정에서 대성통곡을 하다가 끝내 실신하고 말았다.

이를 보고 감동을 받은 애공이 말했다.

“초나라에 신포서와 같은 충신이 있는데 어찌 나라를 부흥시키지 못하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어찌 앉아서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어서 많은 군사를 내주며 다시 역전돼 오나라 군사들이 쫓기는 신세가 됐다.

그런데다 오나라 안에서 정변(政變)까지 일어나자 합려는 초나라와 화의를 맺고 급히 퇴군하고 말았다.

이렇게 진정지곡(秦庭之哭)은 신포서 장군이 초나라를 구하기 위해 진나라의 조정에서 대성통곡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간절한 행동을 비유하는 말이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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