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형 을지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손톱은 아이의 성장·발달과 영양 상태 심지어 질병의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중요한 신체 부위중 하나다. 게다가 아이의 평소 위생 상태도 손톱을 통해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아 필자는 아이들 손톱 관리에 특별한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놀거나 자기 전 씻기는 것이 주로 필자의 역할이기에 아이들 손톱 상태는 아내보다 필자가 주로 인지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부터 가끔 아이들의 손톱 정돈에 대한 부탁이 들어온다. 그럴 때면 필자는 서슴없이 손톱을 다듬는다. 손톱 깎기는 물론 손톱 끝에 묻어 있는 검은 때조차도 어떻게든 흔적 없이 제거하려고 한다.

특히 막내는 아직도 손가락을 수시로 빨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을 쓰게 되는데 필자의 성격상 한번 다듬을 때 꼼꼼히 하려다보니 손톱을 깎는 중 가끔 손톱 밑살도 살짝 자를 때가 있다. 아이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원망의 눈초리로 아빠를 쏘아본다. 너무 짧게 깍지 말라는 아내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결과이기에 아내의 핀잔도 늘 뒤따른다.

이런 필자의 성향 때문인지 아이들은 손톱 손질만큼은 가능한 아빠가 하지 않기를 바란다. 끝까지 하겠다고 버티기라도 하면 조심해 줄 것을 수차례 당부하면서 아빠의 손놀림을 면밀하게 살핀다. 아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사랑의 마음이 혹시나 발생할 실수로 인해 외면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필자 모습이 애처로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평소처럼 아이들의 손톱을 깎으려는데 눈앞의 손톱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손톱 밑살을 베어내는 실수가 최근에 더 많아졌다. 처음엔 조명이 좋지 않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필자의 오판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 안경 렌즈를 점검하러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노안' 증세였다.

돌이켜 보니 이를 의심할 만한 징후들이 있었던 것 같다. 가까운 곳을 보다가 먼 곳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면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선명하게 보이는 현상이라든지, 책을 한참 보다가 고개를 들면 흐리게 보이다가 점차 선명해지는 등 이런 저런 현상들이 최근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벌써 이러면 어떡하나하고 주위 동료들에게 푸념하니 대다수가 이미 경험하고 있었다. 다초점 렌즈 착용을 권하는 안경사의 제안을 거듭 거절하고 싶었지만 필자의 본업은 둘째치더라도 아이들에게 혹시나 가해질 필자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 비싼 제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귀가 길에 문득 필자의 고등학생 시절, 아버지와 함께 음악 연주회를 갔었을 때 일이 떠올랐다. 당시 아버지께서 앉은 자리 바로 뒤에 앉았던 필자는 아버지께서 연주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연주회 안내서를 아버지께 직접 갖다 드렸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설명서를 잠깐 훑어보시기만 할 뿐 자세히 보시지 않고 가만히 들고만 있으셨다. 읽어보시면 연주회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될 텐데, 왜 읽는 둥 마는 둥 하실까, 그때는 궁금증이 서운함보다 앞섰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이유에 대해 여쭙지 않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 안보시냐고 여쭸다면 아마도 아버지는 다른 이유를 대며 얼렁뚱땅 상황을 넘겨버리려고 하셨을 테니까, 당신의 '노안'을 숨기기 위해 말이다.

갑자기 둘째 아이가 귀 속에서 소리가 난다고 불평한다. 큰일이다. 어두컴컴한 터널 같은 귀 구멍 속은 더더욱 보기가 쉽지 않는데 이를 어쩌나. 간절히 부탁하니 어쩔 수 없이 불빛 가까이 귀를 가져와 보려고 하지만 예상대로 또렷하지가 않다.

이런 상태로 귀속을 소제하다가는 틀림없이 외이도에 손상을 입힐 것만 같아 결국 병원에 있는 이경(귓속을 들여다보는 기구)을 잠깐 빌려와서 꼭 봐주겠다고 아이를 달래 본다. 그러나 당장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아이는 계속 징징거린다. 참으라고 소리를 질러야 할지 아빠의 연약함을 이해해 달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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