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신학기 전국서 160종 6482권 적발

대전 D대학교 부근의 한 복사점. 여러 대의 대형 복사기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옆에는 제본기가 설치돼 있어 순식간에 책이 한 권씩 복사돼 나온다.

심지어는 구내에 복사점이 있는 대학도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지난 학기 초 한 대학서점에 교과서로 채택된 책 100권을 납품했지만, 5권도 팔리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 가방에 있는 책 중 90% 이상이 복사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알 만한 사람'들로 구성된 대학사회에서조차 출판물에 대한 복제 불감증이 만연돼 있다.

학기가 시작되는 3월과 9월에 성행하는 대학가 불법 복제의 현황을 알아보고, 대책을 진단한다.

◆대학가 "누가 비싼 원본교재 쓰나"= 새 학기가 시작되면 관계당국의 집중단속에도 불구하고, 대학가 주변 불법 교재복사가 근절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광부와 저작권보호센터가 지난 3월 초 신학기에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출판물 불법 복사 및 복제 단속활동을 전개한 결과, 156개 복사업소에서 160종 6482권의 불법 복사 서적을 적발했다.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실시한 이 단속에서 지역별로는 서울이 37개 업소(2792부)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으며 충청·강원이 33개 업소(1713), 광주·전라가 31개 업소(917부)로 뒤를 이었다.

대학가별로는 서울 소재 I대학(1956부)에 이어 충북 소재 S대학(556부)과 C대학(415부) 주변 복사업소의 적발 및 수거 건수가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또 충남지역 K대학(220부)과 대전지역 D대학(80부) 주변 업소도 비교적 높은 적발 건수를 보였다.

◆악순환에 학술 출판사 존립기로= 이 같은 강력 단속에도 불구하고 학기 초엔 2만 원 안팎의 학술책들을 대량 복사해 절반 값 이하로 사고파는 풍경이 곳곳에 널려 있다.

대전 C대학 인근의 복사점 주인은 "학생들이 '책값이 워낙 비싸서 그렇다'며 단체로 수십 부씩 복사를 요구하면 거절하기 어렵다"며 "교재복사를 하지 않는 곳이 어디 있느냐"며 되레 언성을 높였다.

특히 일부 교수들은 외국 원서를 짜깁기한 강의교재를 만들어 불법 복사를 부추기고 있어 대학가의 '저작권 보호 불감증'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학술서적 전문출판사들은 요즘 존립의 기로에 서 있다. 반품률이 85%에 이르는 등 출판사의 손익분기점인 1000부는 고사하고 500부도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많이 팔리면 책값이 떨어지겠지만 불법 복제본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다 보니 출판 단가를 맞추기 위해 책값을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현행 저작권법에는 출판사연합회 관리기관에 사용료를 납부했을 경우 책 내용의 10%내에서 복사할 수 있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5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불법복제 불감증 해법은= 출판업계에선 불법 복사 문제는 일반서적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주로 대학교재에 국한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의 핵심은 대학교재의 개발 및 수급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현행 대학교재의 경우 종류는 지나치게 많고 수요는 적어 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점이다.

교재 출판을 할 경우 일정한 수강생들이 있기 때문에 판매가 확실해 분명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출판사 측과 자기 입맛에 맞는 교재를 개발하고 싶어 하는 교수들의 의지가 결합, 과목마다 무수한 교재가 등장한다.

그러나 수강생은 대개 1년에 수백 명에 불과하니 출판사로서는 수익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책값을 끌어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전의 한 출판사 대표 L씨는 "대학가의 불법 복사 만연은 소비자의 무감각도 문제지만 교재 개발을 꾀하는 저자와 출판사의 결탁에서 조장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불법을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나 학문적 성과가 낮은 교재 개발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대학가의 풍토도 차제에 바뀌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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