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에 '3대 왕따'가 있다고 한다.

첫째 왕따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고도 떨어진 사람(호남은 제외), 둘째 왕따는 정부 고위직에 있다가 징발되어 출마했으나 떨어진 사람, 셋째 왕따는 돈 안드는 선거한다니까 출마했다가 빚만 지고 떨어진 사람.

이번 선거의 특징을 잘 나타낸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 관청가에 '살생부 괴담'이 여기 저기 나돈다하여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괴담들은 현직 단체장이 낙선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더욱 심하다.

'모 국장은 선거때 앞장서 A의 운동을 했다 더라'

'모 국장은 옷 벗을 각오하고 선거운동을 했으니 정말 옷 벗어야 한다 더라'

그런가 하면 어떤 공무원은 친척, 처갓집, 동창생… 가릴 것 없이 가까운 사람은 모조리 입당원서를 받아 주고 후보경선을 도왔으니 이번에 좋은 자리로 영전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어떤 군청에서는 군수당선에 논공행상을 놓고 공무원들 사이에 대립과 반목, 심지어 모함까지 난무한다고 한다.

줄을 잘못 섰다가 신상에 불이익을 당할까 불안하고 암암리에 나돈다는 살생부에 이름이 올라있는 공무원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아침에 나도는 살생부에는 자신의 이름이 있어 식은 땀이 났으나 오후에 나도는 살생부에는 다행히 이름이 빠져 안도의 숨을 쉬었다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공무원 사회가 '적군'과 '아군'으로 편을 가르고 대립한다면 지방자치는 하나 마나다.

정말 우리 공직사회가 이런 수준 밖에 안되는가?

또 어떤 시장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자기 사람을 미리 승진시키는 얌체 같은 인사도 서슴치 않는다니 혀를 찰 노릇이다. 이래 저래 지금 우리 공무원 사회는 심란하다.

원래 '살생부'는 1453년 한명회(韓明澮)등이 수양대군을 임금으로 모시기 위해 우의정 김종서(金宗瑞)장군의 집을 습격할 때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리고… 하는 명단을 작성했던 것을 말한다. 이 살생부에 따라 많은 중신들이 무자비하게 목숨을 잃었고 심지어 수양대군은 친동생 안평대군 까지도 강화도로 귀양 보냈다가 후에 사사(賜死)시켜 버렸다.

결국 이로 인해 어린 단종이 쫓겨나고 수양대군이 보위에 오른다.

이런 끔찍한 사건에나 등장하는 '살생부'가 망령처럼 관청에 나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지방자치는 권력투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삼국지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조는 원소군사와 치열한 전투를 치른 후 마침내 승리한다. 그때 조조의 참모들이 점령한 원소의 진영에서 편지 한 묶음을 찾아 낸다. 그것은 조조의 부하 장수들이 원소와 몰래 주고 받은 것.

"모조리 죽입시다"

그러나 조조는 "원소의 세력이 강할 때는 나도 마음이 흔들렸다"며 그 편지들을 불태워 버렸다. '살생부'를 없애 버린 것이다. 그러자 이제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장수들이 감격하여 조조에 더욱 충성하고 목숨을 걸고 싸웠다.

5·31지방선거의 승자나 패자, 그 가슴에 묻고 있던 '살생부'가 있다면 조조 처럼 모두 불태워 버리고 새롭게 출발하자.

그리고 다시는 공무원들이 선거에 줄 서는 일이 없도록 다짐하자. 7월로 예정된 대전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교육자들이 줄서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면 또 '살생부'가 나돌까 걱정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