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 요청 받아놓고 안갈 수도 없고…

'오라는 데는 많고,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지방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요즘 단체장들은 하루 해가 짧다. 몸이 둘이라도 부족할 판이다.

각종 행사장 참석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청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단체장의 일정을 챙기는 모 자치단체 관계자는 "오라는 데가 워낙 많아 일정을 짜는 것조차 보통 힘든 게 아니다"며 "모든 행사에 으레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들의 의식이 큰 문제"라고 토로했다.

단체장의 참석을 요청하는 행사도 경로잔치부터 체육대회, 동문회, 등산대회, 창립대회, 전시회, 세미나, 각종 기관·단체 이·취임식, 심지어 에어로빅 경연대회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없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의 복리증진과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해야 할 자치단체장들은 행사장에 얼굴을 내밀기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원종 충북지사는 이번주에 공식행사만 16회가 잡혀 있고, 비공식적인 행사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훨씬 많으며, 여타 시·군 자치단체장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행사는 이 뿐만이 아니다. 중앙단위 행사나 유관기관 행사 등 수없이 많은 행사가 곳곳에서 개최돼 그야말로 '행사 공화국'을 방불케 하고 있다.

유권자들의 의식도 문제다. 도지사나 시장·군수가 참석해야 행사를 잘 마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치단체 관계자는 "(우리 행사장에) 안 오면 다음 선거에서 재미 없을 줄 알라"며 "일부 지각 없는 주민들은 '선거 때 두고 보자'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단체장이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데서 야기되는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유권자 스스로 자신들이 뽑아 준 주민의 대표에게 부여한 사명을 다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셈이다.

하지만, 차기 선거를 겨냥해 단체장 스스로 행사장을 쫓아 다니며 '얼굴 마담'을 자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대수 청주시장은 새해 벽두부터 산하 36개 전 기관을 연두 순방한 데 이어 또 한달 동안 일선 동사무소 행사에 잇따라 참석해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위한 얼굴 알리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자초했다.? 한 시장은 이번주에도 체전 유공시민 시상식, 경로잔치, 서예교실 회원전, 체육대회, 등산교실 출발 격려에 이르기까지 하루에 3~4차례의 행사에 참석하거나 참석할 예정이다. 주민 허모(38·옥천군 군북면)씨는 "몇 명만 모여도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부르는 유권자들의 의식도 문제지만, 초상집이나 예식장까지 기웃거리며 표 사냥에 매달리는 선출직도 큰 문제"라며 "지방자치의 참뜻이 훼손되지 않도록 이제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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