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수확 당일판매' 유통 혁신

▲ 부여 석성농협 이봉구 경제상무가 예냉된 양송이 포장을 하며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전우용 기자
충남 부여 석성농협 농산물산지유통센터 이봉구(42) 경제상무는 국내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성립됐던 '판매 및 유통업자=강자, 생산자=약자'의 절대구도를 무너뜨린 인물로 평가받는다.

과거 농산물 중간 유통업자는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을 휘두르며 풍작이나 흉작에 상관없이 언제나 돈을 벌었다.

하지만 생산자인 농민들은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농산물의 가격폭락을 수시로 겪으며 밭을 통째로 갈아엎기가 다반사였다.

농산물 유통시장이 중간 유통업자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생산자인 농민들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로 수십년간 지속됐기 때문.

이 같은 불공정한 농산물 유통체계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 계기는 산지에서 예냉처리된 농산물을 저온유통하는 방식으로 대형 유통업체와의 직거래가 활성화된 데 기인하고 있다.

이는 도매시장 등에 농산물을 출하해 경매를 거쳐 일반 소매점으로 넘겨졌던 기존의 농산물 유통체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농업선진국에서만 시행되던 예냉처리와 저온유통체계 기법을 지난 90년대 후반 국내에 최초로 도입시킨 인물이 바로 이 상무다.

지난 98년 초 부여의 구룡농협에 몸 담고 있던 이 상무. 그는 생산된 딸기를 한푼이라도 더 받고 팔기 위해 그날 새벽에 수확한 딸기를 오후에 시장에 출시하는 '당일수확 당일판매' 방식을 도입해 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유통방식으로 신선도가 유지된다는 이유로 일반 딸기에 비해 가격대는 높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늘어난 소득에 비해 매일같이 새벽에 수확해야 하는 딸기재배농가들의 부담은 커져갔고 유통방식의 변화가 곧장 수익성 확대로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 이 상무는 선진농업국에 대한 자료조사를 거쳐 '예냉기법'이란 새로운 카드를 들고 나온다.

관건은 당시 국내에서는 생소했던 '예냉기' 설치로 이는 미국에서 '수확 후 관리기술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 재미교포로부터 기계설계에서부터 설치에 이르기까지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또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맞춰 포장단위도 소포장으로 바꿔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 대형 유통업체들과 잇달아 납품계약을 체결하며 안정적인 판로를 개척하게 된다.

대형마트 입장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 보장과 규격화에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 앞다퉈 공급계약을 맺게 됐다.

이처럼 도매시장 위주의 출하 형태에서 생산지와 소비지간의 직거래라는 새로운 개념의 유통방식은 이내 모든 농산물로 확대됐고, 이로 인해 이 상무는 회원농협 직원 중 최초로 정부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수여받는 영예도 안았다.

딸기의 성공 이후 이 상무는 부여의 대표적인 농산물인 양송이 버섯을 위해 지난 2002년 석성농협으로 자리를 옮겼다.

구원투수 역할을 맡게 된 이 상무는 우선 버섯류에 적합한 예냉기 개발에 매달렸다.

기존의 예냉기로는 버섯이나 잎채소류의 수분증발을 억제하는 데 한계가 있어 상품가치가 떨어진다는 판단아래 새로운 예냉시설 개발에 나선 것.

결국 이 상무는 지난 2003년 수분 증발로 인한 상품성 저하를 최소화하는 한편 예냉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차압예냉기 개발에 성공해 실전배치했다.

또 정부의 지원아래 예냉고와 저온 선별장, 저온저장고, 집하장 등이 두루 갖춰진 농산물산지유통센터도 건립하고 생산 작목반 구성을 통한 계획 생산으로 산지 경쟁력도 강화시켰다.

유통망은 딸기거래를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

이로 인해 8곳의 대형마트에 납품됐던 양송이 버섯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102곳으로 납품처가 대폭 확대됐다.

버섯 판매로 인한 매출액도 지난 2002년에는 88억원을 기록했지만 다음해에는 116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152억원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농산물 유통전문가로 서울대를 비롯해 농협 중앙회 및 회원농협 등 전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강의 요청도 소화하고 있는 이 상무의 다음 목표는 농산물 공동마케팅이다.

"지역별로 마케팅만을 전담하는 유통전문조직과 인력을 구성해 판매와 유통을 맡긴다면 효율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뛰어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이 상무는 "3년 이내에 부여에서 이 같은 조직을 탄생시킨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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