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기획 - Youth Paper]

6월 20일, 대전가오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학생들의 미래 진로탐색과 진로설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대전의 문화재를 탐구,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유회당이다. 유회당과 기궁재는 권이진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로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유회'는 부모를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는 곳과 집, 문집이 보관되어있는 판각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 판각에서 문집을 도둑맞은 적이 있어서 현재는 유회당 안쪽 다른 건물로 옮겨졌다고 한다. 유회당에는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놓여 있는데, 약 250년을 살아와서 그런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절로 느껴졌다. 두 번째 방문지는 단채 신채호 선생의 생가지이다.

단재 홍보관과 단재 동상, 복원 생가에 방문하여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해설사의 설명이 있어 무척 좋았다. 1992년 여름에 신채호 선생의 생가를 발굴 조사하고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생가를 복원했다고 하는데, 복원되기 전 생가는 위태롭고 기울어지기 직전의 초가집이었다고 전해진다.

흥미롭고도 그의 꿋꿋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신채호 선생이 수감 생활 도중 건강이 악화되어 교도소에서 "보호자가 있으면 출소시키겠다"고 말했으나, 그의 보증인이 친일파라는 이유로 신채호 선생은 가석방을 단호히 거절하고 1년 후 결국 목숨을 거둔다. 이런 신채호 선생 생가지를 방문하면서 그의 결단력과 놀라운 애국심에 깊은 감명을 얻고 우리도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동춘당과 그 일원을 방문했다. 동춘당과 호연재 고택 등을 둘러보며 아직 과거에 머물러있는 동춘당을 가슴속에 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동춘당은 조선 시대 송준길 선생의 별당으로, 굴뚝을 따로 세우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유학자였던 송준길은 따뜻한 온돌방에서 편히 쉬는 것도 부덕하게 여겨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하였다.

또한 동춘당에서 생활했던 호연재 부부, 그중에서도 여성 지식인이었던 호연재에 대한 일화도 많이 들었다. 그 당시 여성 지식인이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집안의 큰 부였는데, 노비들이 동춘당 넓은 뜰에 다 들어올 수가 없어서 두세 번이나 나눠서 들어와 인사할 정도로 숫자가 매우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술을 빚고 마시는 것을 즐겼는데, 호연재 후손들에게는 술 빚는 책 두 권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소나무 순으로 만드는 송순주는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에도 지정되었다고 한다.

대전의 흥미롭고도 자랑스러운 여러 문화재를 둘러보며 우리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고 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런 행사가 앞으로 더 많은 학교에서 시행되었으면 한다. 박시현 청소년 시민기자

"이 기사(행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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