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호 충남대학교병원장
[시론]

카드놀이, 바둑 그리고 장기판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훈수이다. “장기 훈수는 뺨 맞으며 한다”는 말 그대로 떠들썩한 장기판에서 판세를 바꿀 뻔히 보이는 한 수를 훈수꾼은 여간 참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훈수꾼은 약한 편을 들기 마련이어서, 결정적인 훈수로 판이 뒤집어지기도 하지만 설사 잘못된 훈수라 해도 책임지는 일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암 진단을 받은 사람 주변에 수많은 훈수꾼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족, 지인, 그리고 아는 의사들은 좋은 병원, 좋은 치료법에 대해 경험과 소문을 바탕으로 훈수를 시작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훈수를 찾을 수 있으나 진정 내가 처한 각각의 상황을 이해하고 경험과 지식을 나누며 책임까지 같이 지고자 하는 ‘조언자’는 드물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국 이후 인공지능이 지식 전문가들의 경쟁상대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다. 올 초부터 국내에 도입된 인공지능기술의 대명사인 IBM 왓슨이 암 치료의 의사결정에 이용되는 상황 역시 인공지능과 인간 의사의 대결로 인식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느낀다.

암 치료에 관여하는 의사들은 대용량의 연구결과, 의무기록 그리고 임상시험 결과에 대한 지식 습득을 통해 암 치료 분야 전문가들의 집단 지식을 이끌어 내 개별 암환자에서 최적의 치료법을 선정한다. 암을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이 방대하고 나날이 변하는 지식의 습득을 기계학습인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남는 시간에 창의적인 암 연구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IBM의 왓슨은 이런 배경에서 암 진료에 도입됐다. 왓슨은 2012년부터 미국의 암 진료 분야의 유수한 의료기관에서 폐암에 대한 학습을 시작했고, 2013년에는 백혈병에 대한 최적의 치료법을 제시하기 위해 연구를 개시했다. 간략하게 말하면 영어로 작성된 방대한 연구결과를 학습하고 기억한 후 환자의 조건에 맞는 치료법을 도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결과로 보면 폐암과 유방암 등에서 왓슨이 제시한 치료법은 암 치료 전문 의사들의 의견과 90% 정도 일치하는 것으로 나와 앞으로의 진보가 기대된다.

IBM 왓슨의 기계학습에 사용되는 자료는 대부분 미국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된 것으로 영어로 쓰인 연구 결과가 주로 이용되고 있다. 암의 발병원인과 진행과정은 유전인자의 차이에 의해 달라질 수 있고, 인종과 환경적 차이 또한 치료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왓슨의 영역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확장되고 있으나, 한국인의 암 치료 결정에서 왓슨의 치료법 제안이 암환자 장기생존에 도움이 됐다는 증거가 있을 때 비로소 왓슨이 훈수꾼이 아닌 진정한 조언자로 자리매김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이 가까운 시일 내에 얻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암환자의 진료에 사용되는 진단시약, 영상기계 및 치료제는 거의 대부분 선진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암환자 치료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 학습된 인공지능기술을 국내 암환자의 치료법 결정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국가 전략적으로 병원을 중심으로 임상 암 연구 분야에 대한 발전전략을 세워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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