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김광호 대전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장

'산소같은 여자.' 1990년대 화장품 광고에 등장했던 이 문구는 당시 광고 모델이었던 여배우의 이름 앞에 여전히 따라붙는 대표 수식어가 됐다. 청량감, 순수함, 깨끗함 등의 이미지를 선사하며, 화장품 광고 문구에 비유대상으로 인용되는 산소는 사실 엄연히 의약품으로 관리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일분 일초 호흡하는 공기 중의 산소를 모두 의약품이라고 하지 않는다. 순도가 높은 산소를 생산하고, 이를 압축, 액화 등을 통해 용기에 충전하고, 유통돼 환자가 사용하는 경우 의약품으로 관리된다. 이처럼 의료용제품에 해당하는 가스 또는 가스의 혼합물을 ‘의료용고압가스’라고 한다.

지난달 1일 약사법에 따라 '의약품'으로 관리되는 의료용고압가스가 우수한 품질로 제조 및 판매되도록 하기 위해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적용이 의무화됐다. 대전·충청권에는 20개의 의료용고압가스 업체가 있고, 전국에는 약 140여개 업체가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PIC/S) 가입 43개국이 의료용고압가스 GMP를 적용하고 있다.

일반적인 의약품의 성상인 '동그랗고 쓴맛이 나는 흰색 알약'과 달리 의료용고압가스는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지만, 효능·효과는 매우 다양하다. 사람을 포함해 동물과 식물의 생존에 필수요소인 산소는 가장 일반적으로 이용되는 의료용 가스다. 만성폐질환자, 진폐증 환자의 호흡 보조 및 산소결핍증, 호흡근 마비 등에 이용되기도 하고, 순수한 산소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작용이 있어 출혈이나 쇼크, 경련이 일어났을 때도 이용된다.

우리 몸이 '호흡'하는 가장 큰 목적은 '산소흡입'보다 '이산화탄소배출'이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호흡의 부산물인 이산화탄소는 오히려 호흡을 촉진하는 용도로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폐쇄순환 마취기에 산소와 혼용해 사용된다. 또 기관지 경련과 같은 호흡기 질환 치료에 이용되기도 한다.

대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질소는 그 자체로 의약품 기능을 하기 보다 산소와 화학반응해 생성된 질소산화물이 약리학적 작용을 나타낸다. 아산화질소(N2O)는 수술 등에 흡입마취제로 이용되는데, 이때 마치 표정이 웃고있는 듯 하다고 해 '소기(Laughing gas)'로도 불린다. 환자의 불안을 진정시키고, 최근 마약중독의 대체요법으로도 그 쓰임이 고려되고 있다. 일산화질소(NO)는 혈관을 확장하는 작용이 있어 협심증이나 순환장애 등에 이용되지만 실제로는 의료용 가스를 직접 이용하는 경우는 없고, 복용 시 일산화질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알약 형태로 환자의 치료에 이용된다.

이밖에도 헬륨(Helium, He)은 산소와 혼합해 호흡보조 목적으로 이용되고, 제논(Xenon, Xe)은 아산화질소에 비해 마취 후 구토유발 부작용이 적어서 아산화질소를 대신해 흡입마취제로 이용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국내에는 헬륨과 제논이 의약품으로 허가받은 사례는 없다.

1994년 완제의약품 GMP가 의무화된 후 약 20년이 흘렀다. 2001년 원료의약품 GMP가 도입됐고, 2012년 한약재 GMP가 도입됐다. 지난달에는 의료용고압가스 GMP가 도입되었다. 품질이 보증된 의약품을 제조하고 공급하기 위한 GMP 제도의 취지에 맞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의약품인 의료용고압가스가 그 쓰임에 맞게 제조되고 품질관리가 잘 이루어져, 안전한 의약품이 환자에게 공급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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