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속 사연]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청주시 남일면 척산리 청주~신탄진 간 국도 인근에 '벽창호'라는 가구점이 있다. 가구점 간판으로 내 걸기에는 뭔가 어색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벽창호'를 '벽에 바르는 창호지'쯤으로 알고 억지춘향으로 상호 명을 짓지 않았을까. 벽창호는 창호지와도, 가구와도 전혀 관계없다. 여하튼 가구점 간판으로 내 건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냥 넘어가자.

벽창호는 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킨다. 원래 '벽창우(碧昌牛)'가 변한 말이다. 평안북도에는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이라는 지역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지역의 앞 자를 택하고 뒤에 소 우(牛)자를 붙인 말이다, 그러니까 벽동과 창성에서 자라는 소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유독 두 지역의 소가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일컫는단 말인가. 사연은 이렇다.

두 지역은 험악한 산간 오지다. 이렇다 보니 이 지역 소는 억세고 몸집이 크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웠다. 여기에다 소의 대명사인 우직함이 더해졌다. '벽창우'는 이런 소의 복합적인 특징을 인간에 비유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집불통이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벽창우'라 불렀던 셈이다. 허나 이 '벽창우'가 언제인지 확인되지 않지만 '벽창호'로 둔갑해 불리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가 많은 한자의 특성과 발음 편이성 선호에 비추어 '벽창우'가 '벽창호'로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碧'은 '壁'으로, '昌'은 '窓'으로 바뀌고, '牛'는 '戶'로 바뀐 듯하다. 그러니까 뜻이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의 '벽창호'가 된 것이다. 어찌 보면 벽은 빈틈없이 꽉 막힌 뜻으로 '벽창호'로 바뀜에는 그런대로 이유가 있는 듯하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계가 사고와 행동을 좌우하는 시대다. 면대면(面對面) 사회적 관계가 갈수록 줄고 있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어 간다. 한 마디로 고집불통 인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요즘의 대세가 소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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