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속 사연]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터미널(Terminal). 항공, 열차, 버스 노선 등의 맨 끝 지점 또는 많은 교통 노선이 모여 있는 역 등을 의미한다. 물리학에서는 '전기가 드나드는 전극(電極)'을 뜻한다. 컴퓨터 용어로도 쓰인다. 중앙에 있는 컴퓨터와 통신망으로 연결돼 데이터를 입력하거나 처리 결과를 출력하는 장치인 '단말기'를 말한다. 외산이지만 우리글 국산처럼 아주 흔하게 쓰인다. 이 말은 시공간이 아주 멀고 먼 고대 로마신화에서 왔다면 믿을까.

로마신화에는 '테르미누스(Terminus)'란 신이 등장한다. 이 테르미누스 신은 '토지의 경계와 끝, 고정불변의 것'을 신격화한 존재로 농경신의 일종이다. 로마인들은 이 신이 국가의 영토와 개인의 토지 소유권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다. 원래 테르미누스 신은 '경계, 가장자리, 끝, 결정' 등을 뜻하는 테르미노(Termino:라틴어)가 어원이다.

로마인들은 토지 경계선으로 삼을 곳이 정해지면 우선 땅에 구멍을 판 뒤 향과 과일, 동물 등 여러 가지 제물들을 함께 쌓아 놓고 불을 지폈다. 이 불이 꺼지기 전 그 위에 경계석으로 삼을 큰 돌을 올렸다. 사람들은 의식을 치른 경계석을 함부로 치우거나 옮기면 흉조가 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뤘다. 허락 없이 경계석을 이동시킨 자가 불경죄로 공개적인 처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 큰 돌이 바로 '테르미누스'다. 농사를 위해서는 토지의 경계선이 꼭 필요하고 이 경계선을 반드시 지켜야하기 때문에 이 경계선의 돌이 신성시되면서 하나의 신(神)이 됐다. 당시 로마에서는 매년 2월 23일 테르미누스 신을 기리는 축제까지 열었다.

이런 신격화된 단어가 시간이 흘러 일상에서 경계, 끝 등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처럼 사용됐다. 이 단어가 영어권 국가로 넘어오면서 '터미널(종점 또는 종착역)'로 변형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영화 제목인 '터미네이터(종결자)'도 이 신에서 유래됐다. 이 테르미누스 신은 농사의 신뿐만 아니다. 무기를 갖지 않고 발이 없어 한번 세워진 장소로부터 결코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국경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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