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엿 먹어라. 남을 슬쩍 재치 있게 곯려 주게 되었거나 속여 넘기게 될 때 이르는 속어다. "엿 먹어라 이놈아, 그럴 줄 알고 거짓말을 했지" 엿은 먹는 음식인데 왜 이런 속어에 주인공이 되었는가.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안 되는데 말이다. 도대체 뭔 사연이 있을까.

사연의 발단은 1964년 12월 7일 서울 전기중학교 입시 자연과목 시험 18번 문제.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1. 찹쌀 1㎏ 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2. 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3. 이 밥에 물 3ℓ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섭씨 60℃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3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다음 중 무엇인가? 1)디아스타제 2)꿀 3)녹말 4)무즙"

답은 '1)디아스타제'다. 헌데 4)번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그들은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문교부와 교육청에 찾아가 그것을 던지면서 소리쳤다. "엿 먹어봐라. 이게 무즙으로 쑨 엿이야. 엿 먹어. 이놈들아, 쓸데없는 소리 마라. 무즙으로도 이렇게 엿을 만들 수 있지 않느냐"며 정답 처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요구가 묵살됐다. 여기서 '엿 먹어라'가 탄생했다.

학부모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기야 소송을 제기했다. 이듬해 3월 무즙도 정답으로 처리됐고, 이 문제로 인해 불합격 학생들을 구제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문교부 측은 배짱으로 버티다 꼬리 내린 뒤 문제에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고 추가합격을 지시했다. 소송에 참가했던 40명은 전입학 형식으로 지원했던 학교에 들어갔다. 이 사건으로 당시 서울시교육감과 문교부차관이 사표를 냈다.

언제부턴가 수험생에게 엿을 선물하는 풍습도 혹시 여기에서 유래되지 않았을까. 엿이 접착성이 강한데다 낙방한 학생들을 합격으로 이끈 효자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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