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회피. 몸을 숨기고 만나지 않거나 꾀를 부려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음을 말한다. 일하기를 꺼리어 선뜻 나서지 않는 것도 일컫는다. "학생이 얼마나 못된 짓을 했으면 학부모가 선생님의 면담요청을 회피했겠는가”, “이시대의 실상을 모른 체 하려는 무관심은 비겁한 회피요, 일종의 범죄다.” 여하튼 뭔가 마음에 안 들어 그 뭔가를 피하려는 인간행동을 말한다.

'빙 돌아가다'라는 회(回)와 '피하거나, 벗어나다'라는 피(避)로 구성된 단어다. 그러니까 회피는 '빙 둘러서 피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단어만 봐도 금방 그 뜻을 알 수 있다. 허나 그 탄생에는 다소 엉뚱한 면이 있다. 물론 출생지는 중국이다.

다름 아닌 과거시험. 이는 입신출세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제도였다. 그래서 응시생들은 반드시 급제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방법의 부정행위가 끊이지 않았다. 요즘의 커닝은 물론, 이름 바꿔 쓰기, 대리시험 등. 가장 심각했던 방법은 시험감독관 매수였다. 감독관 매수는 교묘하게 이뤄져 쉽게 드러나지 않아 그 피해가 극심했다고 한다. 감독관이 친척이거나 친지의 경우 매수를 통한 부정행위가 아주 은밀하게 이뤄졌다는 얘기다. 이를 막을 방법은 응시생의 친지나 친척을 감독관에서 제외시키는 것. 이를 '회피'라 했다. 또한 이 회피는 '과거에 급제해 임용된 관리는 자신의 고향에 부임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키기도 했다. 자칫 정에 이끌려 정사(政事)를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시험과 관련된 회피가 이젠 과거시험과 이별하고 본래의 의미로 빙 돌아서 왔다. 근래에 와선 법률용어로까지 확대됐다. 소송법상 개념으로 법관 자신이 기피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발적으로 그 직무의 집행으로부터 탈퇴하는 제도를 '회피'라 한다. 세상에는 아니꼽고 치사한 일들이 너무 많다. 모두 맞짱 뜨고 싶지만 그냥 회피한다. 똥이 무서워서가 아닌 더러워서 피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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