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최초의 승전지

▲ 이치대첩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일대

임진왜란(1592년) 당시 최초의 승전지역으로 꼽히는 이치대첩지.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의 이치대첩지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전북 완주군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군의 전략상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지리적 여건이 말해 주듯 이치대첩지는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지금도 말없이 후손에게 전해 주고 있다.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이치대첩지는 지난 1984년 문화재 자료 제25호로 지정 관리해 오다 2000년 충남도 기념물(제154호)로 승격된후 국가사적지로의 지정을 위해 현재 몸부림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 가치와 교육적 효과가 상당함에도 불구, 국가적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등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어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치열했던 상황은 이러했다.
임진년 7월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적은 군량미의 현지 보급을 위해 현 위치(배티재)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 했다.

적장 고바야가와가 거느린 2만 병력은 전략상 매우 중요한 이 지역을 장악해야만 조선침략 전쟁을 원활히 수행할 것으로 보고 총력전을 펼쳤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한 권 율 장군의 관군은 이 땅을 유린하려는 왜군의 공격을 용납하지 않았다.

비록 적은 군대이지만 우리 금수강산을 수호해야 한다는 호국정신은 2만이라는 대병력을 섬멸, 대승을 거두는 등 우리 나라 전역에서 힘겨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관군과 의병들의 사기를 북돋워 줬다.

더 이상 이 땅이 왜구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며 죽기를 각오한 관군들 앞에서 왜군들은 그야말로 왜소하기 그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이치대첩지의 대승은 권 율 장군의 철저한 사전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왜군들이 배티재를 넘어 호남진출을 꾀할 무렵 이에 앞서 권 율 장군은 동북 현감 황 진과 1500명의 관군을 거느리고 왜적들의 호남진출을 막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때 고바야가와가 이끄는 왜적은 수의 우세함과 승승장구한 힘을 믿고 단숨에 이치를 넘으려고 덤벼드는 것을 권 율 장군은 전 병력을 독려, 결사전 끝에 적을 섬멸하는 대승을 거뒀다.
엄청난 패배를 당한 왜군들은 이로 인해 다시는 호남에 진출하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됐다.

이 같은 이치대첩지는 임란 3대 대첩으로 꼽히는 행주대첩과 진주대첩 보다도 역사적 의의와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임란 초기 호남지역을 장악, 왜적들이 병참기지로 삼으려 했던 계획을 수포로 돌리게 함으로써 임란의 전세를 뒤엎는 전기를 마련한 임란 3대 대첩 중 최초의 승전지로서 후세들의 산교육장으로 활용 가치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는 등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찾기 위해서는 국가사적지 지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곳은 매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승전지 순례코스로 답사가 이뤄 지고 있으며 지난 1999년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와 금산군이 공동 주최한 이치대첩의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한 학술 세미나에서 ▲왜군은 이치대첩 패배로 임란 이후 공포심을 갖는 계기가 됐고 이치대첩은 제1차 진주성 전투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치대첩의 승리는 서울 수복의 계기를 마련한 중요한 전투였다. ▲임란 초기 육전에서의 전세를 뒤엎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게 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 같은 이치대첩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현실에서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고 고증에 따른 국가사적지 지정의 필요성이 확인돼 민족의 교육장으로 개발해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금산군은 사적 105호로 지정된 칠백의총(금성면 의총리)은 패전 지역임에도 불구, 사적지로 지정돼 보호 관리되고 있으나 정작 승전지역인 이곳은 사적지로 지정되지 않아 지난 1991년도부터 추진해 오고 있는 성역화 사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곳의 성역화 사업에 드는 비용은 총 사업비 65억8000만원으로 기투자된 금액은 7억2000만원이며 향후 투자에 58억5700만원이 소요되나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많아 성역화 추진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곳에 추진된 사업내용은 현 위치 3415평 부지를 매입(1981∼1991년도) 정리해 비각 설치(1992년), 사당 신축(1993년), 삼문 신축(1994년), 사당, 삼문 단청 및 담장 신설(1995년), 외삼문 신축 1동 등이며, 지난 2000년도에도 350여평의 토지를 매입해 놓고 있는 상태다.

향후 추진 계획은 기념관을 비롯한 관람정, 대첩정, 전승탑, 휴게실, 관리소, 동상 1식, 기념비 1식 등 총 17개 분야에 60여억원의 사업비가 소요될 전망으로 국가사적지 지정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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