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속 사연] 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11세기 초 영국 중서부 코번트리(Coventry)로 가 보자. 당시 이 지역 영주는 레오프릭 백작(Leofric Earl of Mercia)이었다. 악명 높은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전형이었다. 보다 못한 아내 고다이버(Godiva)가 세금을 낮춰달라고 간청했다. "턱도 없는 소리 마시요"라며 핀잔으로 아내를 무시했던 백작은 갑자기 이상한 조건을 내걸었다.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한 바퀴 돈다면 세금을 내려 주겠소"라고 했다. 생뚱맞은 제의지만 여민(與民)사상이 몸에 밴 고다이버의 대답은 생각할 틈 없이 "좋소"였다. 이 사실이 부지불식간에 온 성내 사람들에게 퍼졌다. 고다이버와 주민들이 은밀하게 모였고 합의했다. "알몸으로 말을 타고 성내를 돌때 모두 문을 잠그고 창문을 가려 절대 보지 맙시다"라고. 고다이버는 누구도 보지 않으니 부끄러움 없이 성내를 한 바퀴 돌았다. 곧바로 백작은 세금을 내렸다.

허나 약속을 어긴 고춧가루가 있었다. 다름 아닌 'Tom'이란 노총각 양복장이였다. 그는 도저히 참지 못해 문틈으로 고다이버의 알몸을 훔쳐보고 말았다. 약속을 어긴 그는 천벌로 시각장애인이 되었다기도 하고 주민들에게 맞아 죽었다고도 전해진다.

'Peep'은 '작은 틈으로 무엇을 훔쳐 보다’라는 뜻이다. ‘Peeping Tom’은 ‘훔쳐보는 Tom’으로 상대방이 눈치 못하게 여성의 몸을 훔쳐보며 성적쾌감을 느끼는 일종의 병적 행위다. 우리는 이를 ‘관음증’이라 한다. 따라서 관음증의 주체는 반드시 남성이고 대상은 여성이다. 고바다이버가 알몸으로 성내를 돌았다는 역사와 ‘Tom’이 고다이버의 알몸을 훔쳐보다 벌을 받았다는 전설과 어우러져 ‘Peeping Tom’이란 단어가 탄생했다.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기도 한다. 참으로 기구하고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단어다.

현재 영국 코벤트리에는 고다이버의 알몸 동상이 있으며 해마다 축제가 열린다. 벨기에는 고다이버의 이름 딴 '고디바' 초코렛을 생산해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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