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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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20)


"전하, 하룻밤을 자도 만리성(萬里城)을 쌓는다고 하옵더니 참으로 그 말이 맞사옵니다. 이제 신첩은 상감마마가 그리워서 어이 살으리오까. 신첩을 궁으로 데려가 주시오소서."

광풍일과 후 임씨는 왕의 품에 안긴 채 아양을 떨고 있었다.

"너의 마음을 알 듯하다마는 들어줄 수는 없는 청이니라. 유부녀를 어떻게 궁중으로 데려간단 말이냐?"

왕은 한때의 노리개로 농락한 임씨를 후궁으로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다. 만일 임씨를 궁중으로 끌어들인다면 종실의 부인을 간음한 사실을 천하에 폭로하는 것밖에 안 될 것이었다.

"유부녀면 어떠하옵니까? 어명으로 이혼(離婚)을 명하시면 되는 노릇 아니옵니까?"

임씨는 티끌만큼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듯 뻔뻔스러운 소리를 하고 있었다.

"네가 하룻밤 승은으로 정이 미진하여 그러는 모양이다마는 궁중으로 데려간다는 것은 될 말이 아니고 내가 가끔 나와서 너를 만나면 되지 않느냐?"

왕은 임씨의 더운 땀이 흥건히 흐르는 등을 어루만지며 달래듯 말하였다.

"가끔 납신다고 하오나 궁중에 미색이 수두룩한데 신첩 같은 것이 생각이 나시겠습니까?"

"임금이 어찌 한 계집만 고일 수가 있느냐. 부질없는 욕심 내지 말고 다른 소원이나 말해 보아라."

"지아비와 이혼하고 싶사옵니다."

"안될 말이다. 지아비가 대역(大逆)에 연좌되지 않고서는 부인이 먼저 이혼을 요구할 수는 없는 법이니라. 부인이 질투하거나 음행을 하는 등 칠거지악이 있으면 지아비가 기처(棄妻)를 할 수가 있지만 그렇다고 네가 네 입으로 음행을 하였으니 이혼을 하여 주시오 그럴 수야 없지 않느냐?"

"그렇기는 하옵니다마는 신첩은 이제 오로지 상감마마 한 분만을 지아비로 섬기고 싶사옵니다."

"뜻은 알겠다마는 언젠가 종실 경양수(慶陽守=이름은 이귀존)의 처가 음행을 하였는데 경양수가 마음대로 기처하지 못하고 내가 명하여 이혼케 하였느니라. 종실과 조관이 이혼을 할 때는 임금의 윤허가 있어야 되는 법인데, 임금이 유부녀를 간하고 이혼케 한다면 결국 유부녀를 탈취하는 셈이 되지 않느냐? 내 아무리 호색하는 임금이지만 그럴 수는 없느니라."

"그러시면 며칠에 한번씩 납신다고 언약이라도 하여 주시오소서."

"한가하고 마음이 내켜야 나오지, 어떻게 며칠에 한번씩이라고 언약을 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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