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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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19)


"신첩의 지아비가 염복이 있는 것이 아니옵고 항상 미인을 마음대로 고르시는 전하께서 염복이 많으신 것이옵니다."

"그럴까? 하하하…."

왕은 한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고는 임씨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임씨는 못 이긴 듯이 끌려가서 왕의 품에 안겼다.

"지아비가 누구냐?"

"그런 것 아시면 무엇하실 것이옵니까?"

"알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문성정이 신첩의 지아비옵니다."

"문성정? 가만 있자. 문성정이 누구더라?"

"남천군의 아들 상(湘)이 문성정이옵니다."

"옳지, 남천군의 아들이라? 그래, 언젠가 남천군이 노비 상속 관계로 아우들과 시비가 생겨 장숙용(장녹수)을 통해서 내게 상언(上言)을 했기에 청을 들어준 일이 있었다마는 노비가 몇 명인지 자기도 잘 모른다는 남천군의 며느리란 말이지, 네가?"

"노비가 백 명이면 무엇하고 천 명이면 무엇할 것이옵니까? 이제 겨우 음통(陰通)한 지아비는 벌써 한량이 되어 기방(妓房) 출입에 정신이 미쳐 있고, 독수공방에 청춘 생과부는 무슨 낙으로 살 것이옵니까? 지겨워서 친가로 도망오고 또 도망오고 하다가 우연히 전하를 맞아 부형(父兄)이 시침할 것을 강요하여 마지 못하여 이 자리에 나왔사오나 미천한 것이 천은(天恩)을 입음이 실로 망극하옵니다. 이 같은 영광이 또 어디 있사오리까."

구변도 능란한 임씨는 뻔뻔스럽게 자신의 실행(失行)을 미화(美化)하고 있었다.

"하하하, 네가 썩 달변(達辨)이로구나. 내가 염복이 있구나."

왕은 임씨 같은 유부녀를 만난 것을 염복이라 하였다. 잔에 남은 술을 쭉 비우고 임씨 손에 다시 잔을 잡혀 주었다.

"신첩은 더는 못 마시옵니다."

"술도 음식인데 못 마실 것이 무엇이냐. 어서 쭉 비우고 잔을 돌려라."

왕은 손수 술병을 기울여 임씨의 잔에 넘칠락말락하게 술을 채워 주었다.

봄밤은 소리 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임사홍의 집 후원 깊숙이 들어앉은 별당 근처엔 금족령이 내려 그림자 하나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별당 밀실의 문에 비치던 얼크러진 두 남녀의 그림자가 함께 넘어지면서 사라지고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자창(亞字窓)에 불빛이 흐르고 있는 밀실 안에서는 바야흐로 숨막히는 애욕의 겁화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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