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희 글 임용운 그림

"과인이 외롭게 지내다니?"

진왕이 그제야 표정을 풀며 자상한 말투로 물었다.

"궁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승상의 칭송에 후덕하면서 대왕마마의 안위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이들이 많지 않사옵나이다. 그러기에 드리는 말씀이옵나이다."

참으로 기특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알아 주는 궁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었다. 진왕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시키고 또 시켰다. 밤이 늦도록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으로 흡족했다. 진왕 스스로 생각해도 이렇게 하찮은 궁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날을 밝힌다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진왕은 초란에게 수시로 찾아와 궁내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고하도록 하명했다. 그것은 왕의 명령이기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초란과 밤을 지새운 진왕은 늦은 아침까지 긴 잠을 청하고 해가 중천에 뜬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여불위는 어느 왕보다도 더 넉넉한 모습으로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었다.

수시로 령을 내려 자신의 후덕함을 만천하에 알리게 했다.

"죄인을 사면하고 선왕시대에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상을 내려라. 또한 그 친족들에게 덕을 베풀고 백성들에게 널리 은혜를 베풀도록 하라."

그의 령은 진나라 고을마다 나붙었고 그를 칭송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진나라에서 여불위는 곧 왕이나 다름이 없었다. 모든 전권을 휘둘렀다.

? ?
하지만 진왕이 나이가 들면서 여불위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에 차이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그때부터 중부의 뜻을 되새겨 보고 있었다. 더욱이 그가 내리는 영들이 왕의 영력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속으로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찌 생각하면 그같은 영이 왕명으로 하달되어야 함에도 승상의 명으로 나붙는다는 자체가 불충이었다. 진왕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힘이 여불위의 그것에 아직은 미치지 못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정의 중신들이 대부분 여불위가 심어 놓은 심복인데다 그의 수하에 있었으므로 그들을 혼자서 맞서는 것은 무리였다.

더욱 문제는 통치이념의 차이였다.?

진왕 영정은 근본적으로 법치를 주장했다. 법이 바로서지 않으면 국가의 통치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왕의 생각이었다. 여불위의 생각도 법을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한번은 진왕과 중부 여불위가 조정에 마주 앉았다. 진왕은 왕좌에 여불위는 아랫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찻잔을 기울였다. 다소 냉랭한 한기가 흐르는 가운데 둘은 차를 마셨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했으므로 둘의 관계가 고울 리 없었다. 분위기가 다소 서먹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왕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만백관의 윗자리에 있는 중부인지라 자신들의 권위를 굽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차를 마시는 시간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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