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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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16)


주안상이 들어오자 임숭재와 휘숙옹주는 다투어 왕에게 권주를 하였고, 왕은 누이와 매부에게 회배를 돌리곤 하였다.

두어 순배 돌 때까지 임숭재와 휘숙옹주는 왕에게 바칠 미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려 하지 않았다.

이윽고 밖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아뢰는 소리가 있었다.

"오라버님, 저 상감마마께 뵈이라 부르셨사옵니까?"

"어서 들라."

문이 열렸다.

다홍치마에 노랑 삼회장 저고리로 성장한 임씨가 방안의 휘황한 촛불이 부신 듯 눈을 내리뜨고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방금 더운 물에 목욕을 한 듯 뽀얀 얼굴의 양볼이 발그레하게 홍조를 띠고, 긴 비녀를 꽂은 낭자머리는 반지르르 윤이 흐르고 있었다.

"전하, 신의 누이동생이옵니다. 아비 사홍(仕洪)의 뜻으로 헌상(獻上)하는 것이오니 가납(嘉納)하시오소서."

임숭재는 마치 무슨 물건을 바치듯이 제 누이동생 임씨를 헌상한다고 말하였다.

왕이 눈이 부신 듯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임씨는 날아갈 듯이 큰절을 올렸다.

"전하께서 보시기에 어떠하오니까?"

휘숙옹주가 임씨의 용모가 마음에 드는가 왕에게 넌지시 물었다.

"음."

왕은 마음에 든다는 듯이 크게 끄덕이며 임숭재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유부녀 같은데, 풍원위의 누이동생이라고?"

"그러하옵니다. 신의 동모매(同母妹)이옵니다."

왕은 임씨가 누구의 며느리이며 누구의 부인이냐는 것은 아예 묻지도 않았다.

"가상(嘉尙)한 일이군. 과인이 후궁을 간택하려고 예조(禮曹)에 명해서 양민(良民)의 딸과 조관, 사대부의 양첩의 딸들을 조사해 아뢰라 하였더니 경기감사 홍귀달이 자식 언국의 서녀를 바치기 꺼려 거짓으로 말을 꾸며대 국문케 하였는데, 귀달이 또 언국을 구하려고 임금을 업신여기는 패역한 말을 아뢰기에 부자를 함께 국문하게 하였지."

"소문 들었사옵니다."

"미가녀(未嫁女)인 서녀를 바치기를 꺼려 부자가 거짓을 공모하고 임금을 업신여기는 세상인데, 사홍은 출가한 적녀를 아낌없이 바치니 어찌 가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왕은 가장 부도덕한 멸륜패상(滅倫敗常)의 일을 가장 도덕적인 일처럼 칭찬하고 있었다.

임숭재가 임씨를 왕에게 바치는 일을 슬쩍 자기 아버지 임사홍의 공(功)으로 돌린 데는 이미 그들 부자간에 밀의(密議)가 된 일로써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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