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

구제역 발생으로 축산농가가 시름을 앓고 있다. 방역당국은 이를 치료하기 위해 구제역에 걸린 축산농가에게 이동제한 및 살처분·매몰이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축산농가들은 방역당국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이 검열되고 통제되지만, 어쩔 수 없이 방역당국의 처방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하지만 지난 1일 청양에서 구제역이 발생한지 일주일만에 또 다시 구제역이 발생해 방역당국 조차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축산농가로서는 방역당국의 처방전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며, 통제되고 관리돼야 할 대상으로 쉽게 전락한다. 그러나 통제당하고 관리당하는 입장은 힘들고 비참하다.

우리는 한·미 FTA를 준비하면서 축산농가들의 입장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왔다.

축산농가가 세계시장에 노출돼 무한 경쟁체제로 들어가게 되면 시장규모와 가격경쟁에서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은 물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차원에 있어 FTA는 추세이며 향후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축산농가의 고통을 정당화 시켜왔다.

FTA나 구제역 사태를 경험하면서 통감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거시적 목표 속에는 농업에 대한 감정, 정서에 대한 어떤 자리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 모든 것이 물리적이고 통계적인 대상물로 간주될 뿐이라는 것이다.

만일 지속적으로 축산농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거시적 목표에 따른 처방전만 내려진다면, 결국 축산농가들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결여하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구제역과 같은 통제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한다면, 중앙정부를 비롯한 지방정부는 구제역을 막아낼 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추궁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축산농가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우리 안에 내재한 일방적 의사소통의 악순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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