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 서산시의회 의장

퓰리처상 수상작인 ‘총, 균, 쇠(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한국이 직면한 문제를 거론한 적이 있다. 바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 그리고 한국 사회의 성차별 문제다.

특히, 그는 한국이 여성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은 인구 5000만의 국가이면서 실제로는 2500만 인구의 나라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21대 국회는 의원 300명 중 57명인 19%가 여성으로 구성되며 역대 최고라는 기록을 갖게 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이 겪는 문제, 즉 고용, 임신, 출산, 자녀 양육 문제 및 여성이 주로 피해자가 되는 성폭력 범죄 등에 있어 여성의 이해관계가 실질적으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다. 본질을 외면하고 단편적이고 임시방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다 보니 접점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그 ‘투자’란 무엇인가. 세계는 지금 남녀 동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오래전부터 정당의 자발적인 여성할당제를 취해왔던 북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동수 헌법개정을 필두로 남미, 아프리카 등의 국가들도 헌법이나 선거법 개정을 통해 동수, 즉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대표성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동수는 국제의원연맹에서 제시한 성인지 의회 강령의 첫 번째 과제로 제시돼 있다.

처음에 프랑스는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보이는 국가 중 하나였다. 1990년대 초까지 여성 의원 비율이 10% 정도에 불과해 유럽 국가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했다.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은 마침내 1999년 남녀 동수 헌법 개정을 이끌어냈고 2000년 ‘모든 선거에서 남녀 후보의 수가 같아야 한다’고 명시한 선거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현재 프랑스 의회에서 여성의 비율은 39%다.

프랑스가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여성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남녀 동수 민주주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투자했기 때문이다. 동수 민주주의는 1989년 유럽평의회에서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으로써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대표성을 주장하는 개념으로 탄생했다. 따라서 여성의 과소 대표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전체의 문제다. 동수 즉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대표성은 완전하게 평등한 대의 민주주의를 위한 기본 원칙이다. 정치 과정에서 여성의 배제나 과소 대표는 민주주의의 위기다.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여성 대표성 확대는 현재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누가 정책을 만드느냐에 따라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고 우선순위도 달라질 수 있다. 국민의 절반인 여성의 경험과 요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우리나라도 제도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관점에서도 과소대표성 해소가 필요하고 민주적 다양성 및 성평등의 실질화가 절실하다는 점 등에서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 매년 달래듯이 내놓는 여성 할당 비율에 만족하지 말고 항구적인 남녀 동수 실현을 위해 헌법과 관련법 개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민주주의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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