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묵 대전세종충남 경영자총협회 회장

신축년이 저물고 있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움켜쥐고 소의 해가 찬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다. 새해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그래도 참아낼 만하겠으나 어둠의 터널에 빛이 보이지 않으니 더욱 슬픈 것이다.

신축년 한 해는 밀어내기로 정신을 못 차린 ‘남 탓’에 열중한 해가 아닐까. 감염병에 시달린 사람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얻지 못하고, 자신의 궁색한 변명과 합리화에 몰두해 있었다는 불평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국민을 탓하고, 국민은 정부에 목청을 돋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보다 진영 논리의 노예가 되어 판단 기준은 자신이 어느 무리에 속해 있느냐가 우선이었다. 잘못은 언제나 상대에게 있고, 현재의 모순은 과거에 있으며 이 세상에서 깨끗한 것은 오직 자신들뿐이라고 유튜버들은 나팔 불기에 정신이 없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사람들은 세상을 읽는 독서 능력이 있고, 정확히 읽은 정보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자기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감염병 팬데믹은 세상을 많이도 바꿔 놓았다. 성과 위주의 가치관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제공했다. 사람과 사람이 얼마나 가까우냐에 따라 능력을 평가받고, 그것을 활용한 목표 달성에 혈안이 되었던 인간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묶이고 말았다. 사람 간의 좁은 거리를 능력으로 간주하던 시대는 가고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를 요구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목표 달성의 성과에 만족하던 즐거움은 사라지고,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쪽으로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힘겹게 살아낸 신축년의 열매이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맞닿던 악수에서 주먹으로 상대를 인지하고 살며시 밀어내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가깝게 상대를 끌어안는 포용력은 사라지고 밀쳐내는 데 익숙하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야 하니 상대를 확실히 확인할 수 없고 결국 공개적 확실성을 요구하게 된다.

모든 것은 제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드러내고 매사를 처리하다 보니 투명사회가 됐다. 계속된 감염병 팬데믹에서 잘못 이지러진 것이 있다면, 바로잡고 새해를 맞을 일이다. 가는 해는 잘 다독여 보낼 일이고, 찾아오는 임인년 흑호랑이의 해는 즐거운 마음으로 맞을 일이다. 소의 양순함으로 한 해를 보냈다면 이제는 호랑이의 힘으로 우리의 느슨한 삶을 다시 움켜잡아야 한다. 우선 내 편이 아니면 불신하고 밀어냈던 마음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매사에 ‘남 탓’만 하던 진영의 습관을 바로잡아 ‘내 탓’으로 하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만용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지체하지 말고 서둘러 반성과 개선책을 마련해 서로 신뢰하며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간의 삶 터를 꾸려야 한다. 이 해가 가기 전에 깊이 자신을 되돌아본다면 새해는 희망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주먹은 상대를 인지하고 밀어내는 도구였다면 이제는 그 주먹이 뜨거운 신뢰의 상징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이 손이 인간의 정을 인지하고 상대를 끌어안는 일에만 열중하는 세상이 그립다.

"따따따 따따따 주먹 손으로, 따따따 따따따 나팔 붑니다. 우리들은 어린 음악대 동네 안에 제일가지요"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가 생각난다. 옛 친구 불러 모아 어깨동무하고 동네 한 바퀴 돌며 힘차게 부르고 싶다.

입에 댄 주먹 손에서는 ‘남 탓’의 소리는 아니 나오겠지 싶다. 신축년 해가 가기 전에 불신의 그림자는 모두 지우고 새해에는 모두가 신뢰하며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코로나도 저만큼 물러간다면 금상첨화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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