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충남도교육감

추석이 끝나고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는 요즘, 하늘을 올려다보면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파랗다 못해 코발트 빛깔이 나는 높고 푸른 하늘에 온갖 모양의 솜사탕 같은 뭉게 구름이 피어오르면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창공에 맡기고 싶다.

추측이긴 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천체와 크게 충돌하여 지구의 자전축이 23.5 기울어진 덕분에 지구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을 가지게 됐다. 이 기울기가 참으로 오묘한 것은 지축이 덜 기울었다면 계절의 변화가 미미해 지구상의 물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할 것이고, 기운 각도가 더 크면 계절의 변화가 너무 심해져서 지금보다 훨씬 춥고 더운 기후로 인해 대규모의 태풍, 폭설, 홍수가 반복되어 결국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에 놓였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으로 신비로운 행성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 많은 나라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지구 북반구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나라와 같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를 찾기도 힘들다.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골고루 맘껏 누릴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음력이 더 들어맞긴 하지만 양력으로도 3월부터 석 달씩 나눠지는 사계절은 우리가 봄부터 겨울까지를 누리기에 아쉬우면서도 충분한 시간이다.

어렸을 때 어른들은 자주 ‘요놈아 철 좀 들어라!’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철난다, 철든다는 말은 말 그대로 계절을 안다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농사일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철에 맞게 해야 될 일을 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봄에 씨를 뿌리고 무더운 여름에 땀 흘려야 가을에 풍성한 수확으로 한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그래서 철이 들어야, 때에 맞게 내가 할 일을 해야 비로소 어른으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이렇게 계절을 통해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분 중에 한 분이 철학자이자 동화작가인 윤구병 선생님이시다. 이분은 전라도 함평에서 아홉째 아들로 태어나 이름이 ‘구(9)병’인데 한국전쟁 때 윤구병 선생 위에 있는 형 여섯이 희생돼서 윤 선생의 아버지께서는 남은 자식들은 농사꾼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하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농사일에 익숙한 윤구병선생의 철학은 자연에 기반하고 있다.

윤 선생은 서울대를 나와 잘 나가던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고 싶어 산과 들과 갯벌이 있는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셨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해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의 삶을 가르쳤다. 스무 해가 넘는 시간을 학교에서 통제 당하고, 기계적인 시간 계획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스스로 제 앞가림하는 힘'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라 생각했다. 그는 텃밭 가꾸기, 발효 식품 만들기, 요리 하기, 나무로 생활용품 만들기, 그릇 빚기 등을 배우며 아이들이 마을 안에서 어른들과 함께 자유롭게 지내고, 자연 속에서 자기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스스로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이야말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간 속에서도 올해 3월에 펴낸 책 '우리 순이 어디 가니'에서는 시골 마을의 봄맞이 풍경을 파스텔 그림을 곁들여 세밀하게 담아냈다. 밭 갈러 가신 할아버지와 아버지께 새참을 갖다 드리러 나선 순이에게 다람쥐, 들쥐, 청개구리 등 온갖 동물들이 말을 건네고 돌돌돌돌 흐르는 냇물을 따라 밀밭, 보리밭, 동구 밖을 지나면서 접하는 자연의 세계는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정겨운 시골의 정경을 보여준다.

사람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한 철 한 철 지내면서 철이 들고, 자연이 선생님 노릇을 해서 철이 나게 되고 그렇게 자연과 일치돼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철이 든다. 그런데 지금은, 농사도 하우스 농사를 통해 제 철 과일이 따로 없고, 도시에 사는 많은 이들은 한겨울에도 속옷 바람으로 땀 흘리면서 지내고 한여름에도 벌벌 떨면서 에어컨 밑에서 지내고 있으니 도시에 살면서 철나기를 바라는 것은 삶은 밤에 싹 나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윤 선생의 지적은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 충남교육의 지표는 미래역량을 갖춘 민주시민 육성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 아이들 대다수는 예전처럼 농사를 배우지는 않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미래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분석할 수 있는 수단은 오히려 많아졌다. 자연의 체험을 통해 철드는 교육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 아이들이 미래의 꿈을 키워나가며 지금 자신의 할 일을 해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함께 어울려 살아 갈 수 있도록 충남교육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름답게 철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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