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충남도교육감

Citius, Altius, Fortius (보다 빠르게, 보다 높게, 보다 강하게) 120여년 전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이 제창한 올림픽 구호다. 1896년 아테네에서 시작해 전 지구적인 종합스포츠 축제로 성장한 올림픽이 코로나19라는 악조건에서 1년이 지난 올해, 제32회 2020 도쿄올림픽이라는 이름으로 7월 23일부터 8월 8일까지 약 보름간의 일정을 소화했다.

한국은 양궁에서 4개, 남자 사브르 단체, 그리고 체조에서 신재환 금메달 6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 총 20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이는 30년 만에 가장 적은 메달 수이다. 그동안 커진 국력만큼 최근 우리나라의 올림픽 성적은 좋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9위(금9, 은12, 동9)를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7위(금13, 은11, 동8), 2012년 런던 올핌픽 5위(금13, 은9, 동8) 리우 올림픽 8위(금9, 은3, 동9) 등 앞서 4개 대회 연속 10위 안에 마쳤다는 걸 감안하면 이번 도쿄올림픽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종주국으로 위상을 떨쳤던 태권도를 비롯해 전통적인 효자 종목 유도, 레슬링 등 투기 종목에서 우승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양궁, 펜싱, 체조에서 체면을 지킨 반면 메달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골프, 야구도 빈손으로 마쳤다. 그래도 수영, 다이빙, 근대5종, 높이뛰기, 스포츠클라이밍 등 그동안 취약했던 종목에서 세계와 격차를 좁힌 건 큰 수확이다.

올림픽은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땀 흘리며 대회를 준비한 최고의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만큼 보는 이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명장면들이 탄생한다. 이번에 참가한 선수단 한명 한명이 다 그 주인공이지만 양궁의 안산 선수와 배구의 김연경 선수가 국민에게 준 감동은 사뭇 달랐다.

안산 선수는 하계올림픽 첫 3관왕의 주역이 되었지만, 경기 외적인 페미니즘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회 이틀째인 7월 24일 혼성단체와 25일 여성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오르자 언론에서는 3관왕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짧은 머리와 과거 안산 선수의 글을 문제 삼아 페미니스트 논란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안산 선수는 30일 열린 여자개인전에서도 보란 듯이 금메달을 따냈다. 운동선수에게 정신력의 중요성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3관왕에 대한 압박감도 돌덩이 같았겠지만, 자신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안산은 개인전 준결승과 결승 마지막 한 발 슛오프에서 자신이 국가를 대표하는 운동선수임을 증명했다. 그 모든 논란을 화살 한 방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쫄지 말고 대충 쏴" 안산 선수가 결정적 순간에 스스로에게 한다는 이 말의 청량함이 많은 국민의 가슴을 얼마나 시원하게 했는가!

대회 초반 안산 선수의 열풍이 있었다면, 올림픽 후반에는 김연경 선수가 있었다. 세계 랭킹 10위권 밖의 여자배구는 올림픽 기대 종목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작부터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며 전의를 불태워 온 김연경 선수에게 포기는 없었다. 예선전에서 브라질에겐 3:0으로 패했지만 케냐를 3:0으로 잡고 도미니카를 3:2로 이기고 마침내 8강 진출을 결정짓는 일본전에서 3:2 대역전극을 펼쳤다. 특히나 마지막 세트 14:12로 뒤져있던 시점에 나온 김연경의 투지와 정신력은 엄청났다. 작전타임 때마다 선수들을 독려하며 '하나만, 하나만'을 외치는 김연경선수는 보는 이들의 손을 움켜쥐게 했다. 그리고 8강에서 터키를 또 3:2로 꺽고 4강까지 진출했다. 그 이후 브라질과 세르비아와의 경기는 김연경선수를 우리 가슴에 새기는 덤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김연경은 눈물을 흘리며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여자배구는 고비마다 세계랭킹 4위 터키, 5위 일본, 7위 도미니카를 모두 3:2 풀세트로 이겼다. 안산선수도 개인전 준결승과 결승을 모두 슛오프 10점을 쏴서 이겼다. 스포츠란 그런 것이다. 마지막 그 한발, 마지막 그 한걸음이 우리에게 감동과 기쁨을 준다. 그래서 글 첫머리에 말한 쿠베드탱의 구호가 120년이 넘도록 올림픽의 구호가 되는 것이다. 그 힘든 과정을 치러낸 안산과 김연경 선수는 멋있고 또한 겸손하다. 안산 선수는 "엄마가 해주는 애호박 고추장찌개가 너무 먹고 싶다"며 웃었고, 김연경 선수는 "다른 평범한 가족들처럼 나도 맛있는 것 먹고 싶다"며 소박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우리 충남의 아이들이 이런 모습을 닮아가길 바란다. 공부만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해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도 경험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겸손하면서도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해 가길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은 안산과 김연경 선수가 아이들의 가슴에서 뛰놀길 바란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