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영 ETRI 플렉시블전자소자연구실 책임연구원

인간은 태생적으로 주어진 오감을 이용해 세상을 느낀다. 오감 중 가장 많은 정보를 얻는 감각은 시각과 청각이다. 특히 시각은 전체 정보량의 70% 이상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감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 센서도 이러한 인간의 감각에 대응해 개발돼왔다.

가장 흔하게 접하게 되는 센서는 시각의 이미지센서이고, 다음으로는 청각의 마이크로폰일 것이다.

최근 들어 시청각 외에 촉각에 대해서도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촉각은 시청각처럼 많은 정보를 주지는 못하지만 물체의 질감이나 온도, 압력 등을 감지함으로써 시각만으론 느낄 수 없는 실재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촉각에 대응하는 센서 중 하나가 압력 센서이다. 인간이 주로 촉각을 감지하게 되는 손가락 끝부분에는 압력 센서에 대응하는 세포 중 민감도가 높은 것들이 밀집해 분포돼 있다. 압력센서를 개발함에 있어서도 민감도와 감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로 여겨져 왔다.

특히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주변에서 발생하는 많은 잡음(Noise)을 처리하는 문제 또한 난제 중 하나였다.

필자는 압력을 전기적 신호로 변환시키되 이를 회로를 통해 읽어내지 않고, 발광층을 이용해 시각화하는 소자를 개발했다.

인간은 시각정보를 통해 복잡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지만 압력에 대한 정보를 시각화로 인지하게 될 경우 훨씬 더 직관적으로 대상을 파악할 수 있다. 압력을 소자 내에서 직접 시각정보로 바꾸게 되면, 회로가 필요 없어 매우 얇게 만들어 유연성도 부여할 수 있다.

또 주변의 노이즈에도 매우 강건한 소자를 구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촉각 한계를 뛰어넘는 초고감도, 초고밀도 압력 센서를 구현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는 센서의 개발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의 눈이 감지 가능한 가시광선 영역을 뛰어 넘어 자외선, 적외선 센서의 개발은 인간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인간에게 제공할 것이다. 이로써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가능케 만들어 줄 것이다.

아무리 어두움 밤일지라도 적외선 센서를 통해 본다면 주변의 사물을 감지할 수 있어 야간 투시경, 보안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아울러 물체 온도까지 파악이 가능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전염병도 체온 감지를 통해 일차적으로 환자를 쉽게 검사할 수 있다.

압력 센서는 인간 촉각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숙련을 통해서만 미세한 맥박의 차이를 구분해 낼 수 있었지만 이를 시각화할 수 있게 되면 마치 동영상을 보듯이 맥박을 느낄 수 있어 쉽게 맥진이 가능할 것이다. 또 지금까지 개발된 지문인식 시스템은 광학 방식이나 전기적 방식을 이용한 것이어서 쉽게 위조가 가능했다.

그러나 미세한 압력의 변화를 이용한 지문인식 시스템은 인간의 피부 질감을 3차원적으로 완벽히 재현하지 않는 한 위조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감각 한계를 넘어서는 센서의 개발은 우리가 감지하는 영역을 넓힘으로써 우리에게 더 넓은 세상을 제공할 수 있고, 이렇게 넓혀진 감각의 지평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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