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정치권 안팎에선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제안이 여러 차례 있었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오는 제안이다. 한국은 국회의원 신뢰도가 바닥을 친지 오래인 나라인지라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건 정치혐오에 편승하면서 사실상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반정치(anti-politics)’라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반정치는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인해 축소지향적인 정치를 선호하거나 정치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으로 간주하는 현상을 말한다.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건 찬반이 공존하는 쟁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은
# 꽃 잔치그 많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고, 새잎들의 그늘이 무성해진다. 신록의 계절이 열리는 것이다. 너무나 화려했지만, 한편 너무 짧았던 지난 꽃 시절을 아쉬워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지난주 총선 날 오후, 각자 선거를 한 다음, 전국의 문인들 수십 명이 영천의 보현산 자락에 모였다. 나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산돌배나무가 거의 만개한 때여서 그 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꽃나무 하나를 보려고 서울서 부산에서, 대구에서, 그리고 대전과 전북에서까지 문인들이 찾아오다니, 봄 호사의 극치가 이런 게 아닌가 여길 만도 하다. 하지만 참으로
[충청투데이 최소리 기자] 선택과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말하지만, 이 축제가 온갖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는 개판이 된 지 꽤 오래되었다.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이 문제에 대한 정치적 담론과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심판론이 총선 판을 휩쓸고 있다. 4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선거에 투표는 하고 싶은데 뽑을 정당이 없다는 아우성이 일어난다.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다. 한동훈도 싫고 조국도 싫다.모두 싫은 데도 우리는 선택할 수밖에 없다. 뽑을 정당이 없는 상태에서 선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해 국가 의사와 정책을 결정케 하는 정치적 대의제(代議制)에 대한 루소(JJ Rousseau 1712~1778)의 비판은 신랄하다. 그는 저 유명한 ‘사회 계약론’에서 "영국의 인민들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라고 주장했다. ‘인민’, ‘자유’와 ‘노예’ 그리고 ‘선거’를 병치해 서술한 이 문장이 주는 인상은 너무나 강
왜 양심적이고 정의롭고 균형 감각을 갖춘 사람이 정치에 입문한 뒤 금배지만 달고 나면 극단적 언행에 앞장서거나, 강성 지지층의 극단적 행태에 침묵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이 질문에 대해 경향신문이 지난 2월 2일 특집기사를 통해 전 의원 A의 입을 빌어 답을 내놓았다. A는 "특히 선거가 다가올수록 의원이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면서 "소위 말하는 강성 당원들에게 찍히면 경선에서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렇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자신을 지지하는 강성 팬덤 당원들을 많이 거느린 정치 지도자는
#화신(花信)의 그늘봄꽃 소식과 함께 말들이 퍼진다. 올봄은 말의 성찬으로 풍성해질까? 총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꽃들이 만개하면서 그 향기가 짙듯, 하마 온갖 말들이 우리 사회를 풍미한다.꽃 소식은 이미 와락, 밀려오는 느낌이다. 청도 읍성 주변에 있는 한 식물원에서 수선화가 가득 핀 걸 본다. 그 곁에는 복수초 꽃이 노랗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매화도 벌써 피었다. 동백의 만개는 아직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지난주 거제 바람의 언덕 주변에서 동백숲 길을 걸었는데, 꽃들이 듬성듬성 붉은 기를 내보이는 상태였다. 아마도 이번
[충청투데이 김희선 기자] 선거철만 되면 온갖 소문과 음모, 선전과 선동이 거품처럼 일어나 현실을 뒤덮는다.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미국 대선과 우리 미래의 풍경을 바꿔놓을 총선이 겹친 올해, 우리는 가짜 뉴스의 구렁텅이에 빠질 위험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과연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올바른 정치적 지도자를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두 동강이로 갈라져 서로 적대시하는 극단적 분열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진영에 따라 자신만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옳고 그
20세기 미국 정치학자 오스틴 래니는 민주제 국가 국회의원들의 의정 생활 유형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첫 번째가 ‘정당 병정’(政黨 兵丁· Party Soldier) 유형. 영국 하원의원들이 그 대표적인 예로 당의 엄격한 규율에 얽매여 당의 지도부가 지시하는 대로 의회에서 투표하도록 압력을 받는다고 했다. 독자적인 판단과 권능은 거의 없이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고 돌진하는 군대의 병사와 같다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의 의원들은 당의 규율이 느슨한 덕에 자유롭게, 때론 지도부의 요청을 거스르면서까지 투표하는 재량권이 있다며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드레퓌스라는 사람을 옹호하면서 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신성한 증오’엔 저절로 머리가 수그려진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증오를 보는 게 영 쉽지 않다. 물론 증오를 발산하는 이들은 사회정의를 내세우겠지만, 특정 진영논리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정의는 내로남불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증오는 대부분 이런 내로남불형 증오다.혹 주변에 증오를 자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잘 관찰해보시라. 그
#기상 이변기후 변화의 징후인가. 올겨울도 그리 춥지 않다. 내가 매일 걷는 신천은 올해 거의 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남녘의 곳곳에서 벌써 홍매화가 피고, 영춘화가 피었다는 소식들이 카톡에 뜬다. 신천 상류의 산책길에 꽤 큰 매화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하마 꽃봉오리들이 탱탱해져 있고, 몇 송이는 이미 피었다. 며칠 전 들린 울산 바닷가에는 매화가 만발했다. 정월대보름이 아직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봄기운이 완연한 것이다.우리네 봄소식만 그렇듯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최근 뉴스에서 접하는 기상 이변 소식들은 한결같이 놀라운 것들이다
전통적 가족주의가 가족을 해체하고 있다. 도전적으로 들리는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체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게 틀림없다. 우리 문화에서는 모든 게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개인화의 물결이 드세고 개인주의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어도 가족주의는 여전히 끈질기게 우리의 삶과 사회를 통제한다. 식당에 가면 ‘이모’가 있고, 사랑하는 사람은 곧 ‘오빠’가 된다. 우리는 사람들의 관계를 가족의 관점에서 구성하려는 성향이 있다. 조금만 친해지면 나이의 서열에 따라 형이나 누나 그리고 동생으로 나뉜다. 사회는 이렇게 확대
정확히 30년 전, 1994년의 설날도 올해와 같은 2월 10일이었다. 사흘 연휴 동안 무려 2천6백만 명이 귀성귀경길에 나서는 등 설 전후의 풍경 또한 올해와 닮은 데가 많았다.서민의 삶은 그때도 팍팍했다. 1월 장바구니 물가가 평균 30%나 올랐고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을 이었다. 도심에선 취임 1년도 안 된 대통령의 국정 무능을 비판하며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여야 정쟁도 끝없이 이어져 정치는 살얼음판 위에 선 꼴이었다. 북한의 NPT 탈퇴 후 남북관계 역시 최악 국면으로 치달아 결국엔 북의 ‘서울 불
지난해 7월 정부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을 최대 2년 이상 앞당기기로 했다. 대통령 윤석열이 "250만 채 주택공급에 못지않게 주택에 따른 교통연결망을 제공하는 것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해야 한다"며 "모든 부처가 GTX 조기 개통에 적극 협력하라"고 지시한 덕분이다. 화끈해서 좋다.대통령은 지난 25일 의정부시청에서 열린 여섯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모두발언에서 "당장 올해부터 본격적인 GTX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A선부터 F선까지 전부 완공되면 수도권에서 서울 도심까지 30분 대로 다닐 수
#폐허의 미학한 겨울에 ‘거기’에 가니 여전히 ‘가을’이었다.대전의 복합 문화 공간 헤레디움의 안젤름 키퍼의 전시. ‘폐허의 미학’으로 불릴 정도로 황폐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이 거장의 작품을 국내에서 날것으로 대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 그래서 이 전시가 그를 맞닥뜨릴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지난 가을부터 벼르고 벼른 터였다. 그리하여 전시(23년 9월 8일~24년 1월 31일)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겨우 시간을 내어서 대전행 기차를 탔다. 이 전시가 나의 올겨울의 봄꿈이 되기를 희망하면서.전시 제목은 ‘가을(Herbst)’.
한국이 소멸한다. 지방이 소멸한다. 인구절벽으로 경제가 쇠퇴한다. 대학은 벚꽃 피는 순서로 망할 것이다. 파멸과 멸망이라는 극단적 용어로 표현되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비관주의적 전망도 끔찍하고 놀랍지만, 이러한 경종에도 별로 놀라는 것 같지 않은 태연한 태도에 우리는 더욱 경악한다. 모든 국민이 친숙하게 사용하는 ‘저출산 고령사회’는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2006년 이후 17년 동안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80조원을 투입했음에도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23년 0.72명으로 감소하고
지난해 1월 5일 저출산고령사회위 부위원장 나경원은 기자간담회에서 "청년들이 경제적 이유로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돈을 주는 것 자체만으로 출산을 결심하지는 않겠지만, 그 어느 나라도 돈을 투입하지 않고 출산율을 제고한 경우는 없다"며 현금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이에 당시 대통령실은 "윤석열 정부의 관련 정책 기조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직접 반박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나경원이 20일 후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의문이 풀렸지만, 대통령의 전당대회 개입을 위한 정치적 이유로 나경원의 제
#삭제신년 벽두다. 지난해 마지막 날 한 일을 떠올린다. 별일은 아니다. 그냥 삭제일 뿐이다. 휴대폰에서 와글대는 온갖 정보들 대부분이 삭제됐다. 내게 온 문자들과 모바일 메시지 서비스, 예컨대 ‘카톡’의 온갖 ‘말’들과 ‘사진’들을 거의 삭제했다. 꼭 보관해야 하는 것들을 별도 저장한 다음 삭제하지만, 그건 얼마 되지 않는다. 평소에도 그런 정보들과 소식들, 온갖 사진들을 바로 바로 ?거의 보지도 않은 채- 삭제하곤 하는데, 그래도 남아있는 이런 온갖 ‘쓰레기들’을 마저 버리는 것이다. 왜 삭제하는가? 그런 것들이 쌓이다보니 차츰
2023년이 저무는 시점에서 윤석열 정부 1년 8개월의 대외정책을 정리해본다. 출범 초기부터 전임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가짜평화로 규정하고 전쟁 불사와 선제공격까지 거론하며 대북 강경노선을 천명했다. 문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남북관계의 악화는 방치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위해 북핵을 해결하자면서 전쟁 위기 가능성을 키운다. 북한을 멸절해야 할 악이라는 사고는 북한과의 화해는커녕 적대적 충돌도 불사한다. 심지어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을 떠벌이면서도 인도적 지원은 외면한다. ‘담대한 구상’은
1987년 12월 9일 MBC 사원들은 노동조합 창립선언문에서 "방송을 물이나 공기와 같은 환경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볼 때 국민들은 맑은 물과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듯이 건전한 방송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지적하고, 따라서 "그동안 왜곡, 굴절되어 온 방송체제는 전면적으로 고쳐져야 하며 방송의 고유기능은 시청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전적으로 방송인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한 주 후인 12월 16일에 치러진 제13대 대선이 여당의 승리로 끝나면서 MBC 노조에 대한 회사측의 탄압이 본격화되었지만, 1987년 6월 항쟁
#산책연말의 허전과 추위를 산책으로 대응한다. 늘 하는 일이니 빼먹을 수 없다. 신천 상류. 가창에서 흘러오는 맑은 물이 파동 계곡을 흐른다. 서편 산 아래는 신천 고속화도로. 동편 파동은 한창 아파트 신축들이 이루어지느라 부산하다. 강은 그래도 수량이 제법이고, 양안은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 데다, 비교적 한적하다. 추위에도 거니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대도시를 관통하는 강의 하류 쪽에서 올라온 이들도 있다. 걸어서 오기도 하고, 자전거로 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는 파동과 가창의 주민들이다.마지막 달의 초입인데도 아직 강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