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무용지물 도로 차선]
예산 탓 고굴절 대신 저굴절 유리알 사용
[충청투데이 함성곤 기자] 비가 내리는 날이면 반복되는 ‘보이지 않는 차선’ 문제가 여전히 도로 안전의 사각지대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야간이나 빗길 주행 시 헤드램프와 가로등 불빛에도 차선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운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14일 대전시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2024년)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지역 내 노면 표시 관련 민원은 총 1339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2년 435건, 2023년 437건, 2024년 467건으로, 매년 400건 이상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민원 내용은 주차선 변경 요청, 노면 표시 훼손 등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차선이 잘 보이지 않아 위험하다", "재도색이 필요하다" 같은 시야 확보 관련 민원은 매년 10건 내외로 접수되고 있다는 것이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으로 접수된 사례일 뿐,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철이면 운전자들이 실제로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야간 시간대 비만 오면 차선이 보이질 않아 차선 이탈에 따른 사고 위험이 커지면서다. 대전에서 택시를 운전 하는 정모(62) 씨는 "퇴근 시간대 비가 오면 가로등 불빛이 있는 시내에서도 차선이 아예 안 보이는 경우가 많아 앞 차 뒤꽁무니만 보고 따라간 적이 많다"며 "시야가 불투명한데 차선까지 잘 안 보이니 일하다 사고가 날까 비 오는 날에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차선을 의미하는 이른바 ‘스텔스 차선’ 문제는 도색에 사용되는 유리알 성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유리알은 도색 페인트에 혼합돼 차선에 반사 성능을 부여하는 재료로, 굴절률이 높을수록 더 많은 빛이 역반사 돼 재귀반사도가 향상된다.
한국산업표준(KS L 2521)에서는 굴절률에 따라 유리알을 1호(굴절률 1.5 이상 1.64 미만)부터 4호(1.9 이상)까지 구분하고 있는데, 호수가 높아질수록 반사 성능이 높다.
고굴절 유리알은 반사 성능이 뛰어나지만 단가가 높아, 한정된 지자체 예산으로는 사용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 역시 현재 1호 제품을 사용 중이다.
또 시간이 지나 거칠어진 도로포장의 불규칙한 표면 때문에 일부 도료와 유리알의 표면이 빈 공간으로 떨어지거나 상대적으로 표면이 돌출된 부위에 자동차 바퀴 하중이 집중돼 마모가 증가하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차선 시인성 저하가 단순한 불편을 넘어 대형 교통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김진태 한국교통대학교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빗길에 차선이 보이지 않는 문제는 단순한 시야 확보의 문제가 아니라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지자체 입장에서는 예산 한계로 저렴한 자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지만, 돈 때문에 시민 안전이 뒷전이 되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함성곤 기자 sgh0816@cc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