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 호기심으로 시작한 필로폰 투약
단약 결심에도 작심삼일… 아직도 힘들어

이미지=아이클립아트 제공
이미지=아이클립아트 제공

[충청투데이 함성곤 기자] 국내 마약 중독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지역에서는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서 마약으로 의심되는 물질이 발견되기도 했다. 본지는 마약 중독의 현실과 그 심각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높이고자 마약에 빠져 삶이 무너졌던 지역민의 진솔한 경험을 담았다. 마약이라는 달콤한 유혹 뒤에 숨어있는 고통과 절망의 실체를 깊이 있게 전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처음 마약을 했을 때는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이게 마약인가? 왜 하게 되지?’라는 생각뿐이었죠. 환각도 없었고, 중독될 것 같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충남 천안에 거주하는 박모(35) 씨가 2009년 스무 살 때 강남의 한 클럽에서 대마초를 처음 접한 기억을 꺼냈다. "친구가 ‘떨’이라고 권해 자연스럽게 대마초를 피웠어요. 주변에도 피우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저 호기심에서 시작했죠"

하지만 그는 당시 마약이 주는 환각이나 중독성은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 대마초를 피우면서 ‘이걸 왜 하지?’ 싶었고, 중독될 것 같지 않았어요. 막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말과 달리 아무렇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흔든 사건은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찾아왔다.

박 씨는 군 전역 후 24살이 됐을 무렵 화류계에 발을 들였다. 그 때 알게 된 친한 지인으로부터 우연히 또 마약을 권유받았다. "친하게 지내던 여성이 필로폰을 권했어요. 이전에 대마 경험이 있었으니까 이것도 비슷하겠거니 큰 거부감 없이 호기심에 필로폰을 접하게 된 거죠." 필로폰을 처음 접한 순간을 박 씨는 상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필로폰을 할 때 성관계와 함께 했는데,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경험했어요. 그때야 ‘아, 이래서 사람들이 마약을 하는구나’ 했죠."

그때부터였다. 마약은 곧 그의 삶을 집어삼켰다. 필로폰을 시작한 뒤부터 주변에는 마약을 투약하고 판매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마약을 접하고 나니 주변의 인간관계도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약을 파는 사람들, 약을 쉽게 권하는 사람들만 남게 됐고, 그때부터는 영양제처럼 약을 습관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사실 중독이라고 생각도 안 했어요. 언제든지 그만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아 피곤한데 엑스터시 하나 먹고 쉬어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약을 했어요." 하지만 그건 그의 오산이었다. 약을 투약한 날에는 시간 개념도 사라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주일이 지나간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마약이라는 깊은 수렁 속에서 8년을 지냈다. 이 기간 두 번의 수감생활과 지인들의 배신도 겪었지만, 가장 먼저 무너진 건 가정이었다. 과거 그의 아내는 그의 투약 사실을 알았지만, 함께 이겨나가자고 했다. 그도 그때는 알겠다고 노력하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박 씨는 오히려 더 많이, 더 자주 투약했다. 그 과정에서 가정의 기반은 모래성처럼 서서히 무너져 갔다.

"아내가 첫째를 낳을 때도 저는 다른 여성들과 필로폰을 하며 방탕하게 지냈어요. 마약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했습니다."

박 씨의 생활이 완전히 망가진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마약이 가져온 정신적 부작용이었다. 그는 지속적인 마약 투여로 인해 마약을 하지 않을 때는 극도의 예민함과 의심증에 시달렸다.

"필로폰을 하면 뇌가 망가지는 것 같아요. 저는 아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투하게 되더라고요. 아내가 잠깐 분리수거하러 밖에 나간다고 하면 아무 이유 없이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누가 생각을 주입하는 것처럼 속에서 솟구치더라고요. 논리적이고 생각 끝에 나오는 행동이 아니에요."

이러한 정신적 고통은 결국 가정을 파탄으로 몰았다. 결국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말없이 친정으로 떠났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지 깨달았다. "처음에는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진 제 자신을 보니 너무나 공허했습니다. 약효가 떨어질 때 찾아오는 우울감은 정말 극단적이었어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혼자 남게 된 박 씨는 단약을 결심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약을 끊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벽에 머리를 박고, 심지어 제 손가락을 부러뜨리며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미 온몸에 배어버린 마약의 그늘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마약을 하지 않는 날에는 1초가 1시간처럼, 하루가 10일처럼 느껴졌다. "그조차도 사실 오래 못 갔어요. 결심한 지 1시간, 1일, 길게는 3일이면 다시 마약에 손을 댔어요."

긴 고통 끝에 그는 이제 3년 가까이 마약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힘겨운 나날의 연속이라고 한다.

"마약을 끊는 것은 하루하루가 전쟁 같아요. 가끔은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다시 약을 하고 싶은 유혹이 밀려오기도 해요. 근데 작심일일만 해보자.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 더 참아보자. 작심삼일 세 번만 해보자면서 참았어요. 사실 아직도 힘들어요."

마약을 떨쳐낼 수 있었던 건 가족의 영향이 컸다. "예전에는 ‘내가 마약 한다고 누구한테 피해 끼치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나 같은 사람이 많아져서 마약은 사라지지 않고, 내 딸도 나중에 커서 약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골백번 죽더라도 그런 일은 없었으면 싶은 거예요. 어느 중독자도 가족에게는 권하지 못할걸요."

인터뷰를 마치며 박 씨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약 하고 남은 건 끝없는 고통뿐인 것 같아요. 마약이 구하기 쉬운 건 맞아요. 그러니 그만큼 중요한 게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박 씨의 마지막 한 마디가 긴 여운을 남겼다. "제 이야기가 단 한 명이라도 마약을 멀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함성곤 기자 sgh0816@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