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578돌 한글날]
공문서마저 우리글 외면
“공공기관 사용 앞장서야”
[충청투데이 이용민 기자] 9일 한글날이 578돌을 맞는다. 한글은 최근 한류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만큼 국가적으로도 한글 사용을 장려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한 점이 있다.
한글 사용인구는 남북한과 재외동포 등 약 80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라틴 문자 계열이나 한자에 비해 사용인구는 많지 않지만 과학적 원리 덕에 그 효용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글은 만들어진 지 6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세계 문자계에서 볼 때는 가장 최신 발명품이다. ‘신상’답게 최신 기술인 음운학적 창제원리를 적용했다.
창제 목적은 더 감동적이다. 국민들이 문자를 쉽게 익혀 일상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는 전세계 최고 수준의 문해율을 보이고 있다. 유네스코는 1989년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해 해마다 문맹 퇴치사업에 공이 많은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한국어와 한글은 개념이 다르지만 우리말과 글로 묶여 국어사랑의 관점에서는 동일시되는 측면이 있다. 한글날을 전후해 우리말 쓰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다.
정부와 지자체가 한글 사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외래어 사용은 일상이 됐다.
올 하반기 분양된 충북 지역 공동주택의 이름을 보면 7월 청주테크노폴리스 아테라, 8월 청주 동일하이빌 파크레인, 9월 어썸웨이브 용산, 한화포레나 충주호암, 10월 증평 석미아데나 에듀포레, 청주 흥덕 칸타빌 더뉴 등 외래어 일색이다. 3월 분양된 힐스테이트 어울림 청주사직 사례처럼 회사 브랜드 사용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단지이름을 우리말로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윤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민간 분야에 한글 사용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공공기관이 한글을 홀대하는 건 다른 얘기다.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 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
충북도교육청이 최근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면 ‘리플릿’이란 표현이 나온다. 종이 한 장을 몇 페이지로 접은 간단한 인쇄물이란 의미의 리플릿은 해당 문장에서 ‘홍보물’, ‘설명서’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충북도가 내세우는 대표 정책브랜드 중 하나가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다. 도청 누리집을 보면 레이크파크 정책을 소개하며 로컬콘텐츠, 킬러콘텐츠, 휴먼 네트워크, 마운틴파크, 휴먼파크 등 표현이 표기돼 있다. 보도자료에서 종종 볼 수 있는 ‘TF팀’도 등장한다. 국립국어원은 이미 오래 전인 2002년 국어순화 자료집에 ‘TF’의 순화어로 ‘전략팀’ 또는 ‘기획팀’을 제시한 바 있다.
콘텐츠의 경우, 순화 용어가 ‘꾸림정보’로 의미가 잘 와 닿지 않아 불가피하게 외래어 그대로 사용한다 해도 ‘로컬’을 ‘지역’으로 ‘킬러’를 ‘핵심’ 또는 ‘대박’으로 바꿀 수는 있다. 휴먼 네트워크 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글을 사용하려는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지 않는 대목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쉽고 바른 우리말 사용 촉진을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에 하던 보도자료 평가를 시도교육청, 공공기관으로 확대해 그 결과를 내년 1~2월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평가 이전에 공공기관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우리말, 우리글 사용에 더욱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용민 기자 lympus@cc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