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연구가 양승운 의당학연구소장
도쿄서 발견 입수… 선생 친필 확인
오는 10월 의당학술세미나서 공개

▲ 의당 박세화선생 유묵이 120년 만에 일본에서 돌아왔다. 제천시 제공

[충청투데이 이상복 기자] 의병연구가인 양승운 의당학연구소장이 의당 박세화 선생이 72세(1905년) 때에 직접 쓴 유묵을 공개한다.

한지에 먹으로 쓰여진 유묵의 크기는 가로 45㎝, 세로 164㎝인데, 족자 전체는 55㎝, 196.5㎝로 비교적 큰 편이다.

양 소장이 일본 도쿄에서 발견해 지난달 12일 국내로 들여온 이 유묵은 유묵이 발견된 장소와 일본식 족자의 형태, 72세의 수결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선생이 1905년 춘추대의 정신으로 월악산 용하동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이로 인해 아들, 손자, 문인들과 함께 서울의 한국주차군사령부(서울 명동 소공동)로 연행돼 8개월 간 투옥됐을 때 일본인에게 써준 것으로 보여진다.

선생이 수감됐을 당시, 7언 절구의 시고(詩稿) 유묵을 선물 받았다면 그와 교분이 있었을 것이고, 문한(文翰)이 있는 인물로 일본으로 가져가 족자로 꾸며 집안에 게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고는 ‘의당집’에도 실려 있지 않은 처음 발견된 것으로, 120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 것이다. 일본인들도 박세화의 인품과 고결한 선비정신을 존숭하였기에 글씨를 부탁해 자신의 소회를 담은 시고를 써준 것으로 판단된다.

1906년 면암 최익현 선생이 대마도에 억류되었을 때 일본인에게 글씨를 써준 것이나, 1910년 중국 여순 옥중에서 순국을 앞두고 일본인들에게 글씨를 써준 안중근 의사 처럼 대한인의 품격과 기품을 보여주는 명작이라는 평가가 있다.

이 유묵을 본 정경훈 교수(원광대 교양교육원)는 선생의 친필임을 확인했다.

친필의 제작시기에 대해 의당집 연보에 "선생은 저들에게 오랫동안 구류되어 주상(고종황제)께서 딱하고 가엾음에 하교가 있었다. 선생께서 여러 번 적 우두머리를 깨우쳤는데, 무고한 사람들을 오랫동안 구류함을 꾸짖으니 적들도 역시 감동하였다"고 짧게 기록됐다.

정 교수는 "선생이 한국주차군사령부에 수감된 당시 그의 행적을 연구하는 단초를 제공해 선생이 이미 자정순국을 결심한 내용이 있어 가슴을 크게 울린다"고 전했다.

지금도 월악산 용하동에 가면 선생을 회상하는 주민들 사이에는 "아주 어렸을 때에 의당 선생께서 의병을 일으켜 투옥됐는데, 선생에게 위해를 가하면 더 큰 민란이 일어 날 것이라는 말이 있어 일제도 어쩔 수 없이 선생을 석방하게 됐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양 소장은 이 유묵을 오는 10월 11일 제천여성회관에서 열리는 제11회 의당학술세미나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제천=이상복 기자 cho2225@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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