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노인은 오늘도 폐지를 줍는다
2. [르포] 노인 돼 직접 폐지 수거해보니
모래주머니·녹내장 체험안경 착용
노인 체험복도 입으니 온몸 둔해져
허리 굽혔다 폈다가 수없이 반복
방지턱 걸려 쌓은 상자 쏟기 일쑤
앞 뒤로 차 오갈때마다 위협 느껴
번 돈은 2700원… 자장면도 못먹어
[충청투데이 김성준 기자] "폐지 53㎏이네요. 원래 2650원인데 2700원 드릴게요."
고물상 주인에게 4시간 동안 모은 폐지 가격을 듣고 나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시급으로 따지면 675원에 불과했다. 자장면 한 그릇 사먹을 수 없는 돈이었다. 한 끼 밥값을 벌기 위해 노인들이 감내하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 노인 몸으로 빈 리어카 끌기도 어려워
25일 오후 10시경 대전 서구 도마동 일대를 돌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폐지 수거에 앞서 노인의 신체를 체험해볼 수 제작된 노인체험복을 입었다.
관절이 제대로 구부러지지 않도록 양팔과 다리, 몸통에 억제대를 착용하니 온몸이 둔해졌다. 목은 고정되고 허리를 제대로 굽힐 수 없어 움직이는 데 배로 힘이 들었다. 사지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녹내장 체험 안경까지 착용하니 정말 노인이 된 것 같았다. 체험복 무게만 6㎏에 달했다. 움직일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다리를 들어 올려 리어카에 힘겹게 몸을 밀어 넣고 본격적으로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폐지 수거 활동은 고단한 노동의 연속이었다. 녹내장 안경 때문에 시야가 흐리고 사지 관절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리어카를 끄는 것만으로도 고단했다.
한 공동주택 앞에서 처음 골판지 상자 더미를 발견하고 리어카에 실었다. 허리를 굽혀 포장테이프를 떼어 내고 상자를 접어서 차곡차곡 리어카에 쌓길 반복했다. 상자를 쌓는 일에도 요령이 필요했다. 함부로 쌓았다가 방지 턱 등을 넘을 때 거리로 쏟아지기 일쑤였다. 상자에 붙어 있는 포장테이프를 떼어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포장테이프를 쉽게 떼어낼 수 있는 커터칼이 절실했다. 허리를 굽혔다 펴기를 수차례 반복하니 리어카에 종이 상자가 제법 차올랐다. 상자가 쌓일수록 몸은 무거워지고 상자가 흘러내리는 횟수가 잦아졌다. 어느덧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리어카를 인도로 끌고 가기 힘들었기 때문에 도로 한쪽 끝에서 조심조심 끌고 갔다. 앞뒤로 차가 오갈 때마다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길 건너편에 쌓여있는 상자 더미를 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 횡단보도를 건넜다. 무단횡단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 폐지 53㎏ 팔아도 자장면 한 그릇 못 사먹어
다음날인 26일 오전 전날 모았던 폐지를 갖고 고물상으로 향했다. 리어카 가득 실린 53㎏의 폐지를 1㎏당 50원에 판매하니 2700원의 돈이 손에 들어왔다. 고물상 주인이 50원 더 쳐준 값이었다. 고물상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폐지 46㎏을 팔고 2300원을 받아들고는 "요즘은 폐지가격이 너무 싸서 돈 벌기 힘들어"라고 토로했다. 고물상 주인 A씨 역시 "폐지 가격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서 수거해오는 노인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우리도 남는 게 없어서 가격을 후하게 쳐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며 "어찌보면 국가가 나서서 해야할 재활용품 수거를 노인들이 해주는 것인데 지원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폐지(골판지) 가격은 1년 전보다 27.11% 감소했다.
이원희 대전시 자원재활용팀장은 "폐지 줍는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 야광조끼와 야광안전벨트, 안전장갑 등을 지원하고 있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이분들에게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준 기자 juneas@cc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