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노인은 오늘도 폐지를 줍는다
1. “폐지라도 주워야지” 길에서 만난 폐지 수거 노인들
2. [르포] 노인 돼 직접 폐지 수거해보니
3. 노인은 왜 폐지를 줍나
4. 지자체가 나서서 폐지수집 노인 지원해야
1. “폐지라도 주워야지” 길에서 만난 폐지 수거 노인들
새벽부터 하루 7~8시간씩 일
폐지 5㎏에 500원도 못 받아
느린 걸음,고물상 가는길 험난
과속방지턱 등에 폐지 쏟아져
폐지 줍다가 교통사고 나기도
편마비 등 대부분 지병 앓아
기초연금 30만원 턱없이 부족
오늘도 생계 위해 거리로 나와
[충청투데이 김성준 기자] 낡고 오래된 지역을 오갈 때면 으레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눈에 띄었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든 시린 바람이 몰아치든 노인들은 거리에 나와 폐지를 주웠다. 최근 폐지 수거 노인이 하루 11시간을 일하지만 수입은 1만원에 불과하다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노인의 비쩍 마른 몸보다 갑절은 돼 보이는 수레에 폐지를 가득 싣고 차들이 쌩쌩 오가는 도로를 누빈 것 치곤 박한 대가였다. 충청투데이는 폐지 줍는 노인들이 누구인지, 얼마나 많은지, 폐지를 줍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대안은 없는지 고민해봤다. <편집자주>
이슬비가 내리던 가을밤 대전 중구 은행동의 한 번화가에서 만난 배천만(69) 할아버지는 폐지 수거에 여념이 없었다. 뇌경색으로 마비가 온 하반신을 지탱하기 위해 한 손에 목발을 짚고, 다른 손으로 철제 카트와 유모차 2대를 잡아끌며 느릿느릿 나아갔다. 당초 사용하던 리어카는 도둑맞은 지 오래였다. 다행히 그를 가엾게 여긴 중앙시장의 한 상인이 건넨 카트로 폐지 수거를 이어갈 수 있었다.
배 할아버지는 이날 주말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 사이를 1시간가량 누빈 끝에 비에 젖은 골판지 상자 예닐곱 개와 철 지난 신문지 세 뭉텅이, 다 쓴 에이포지 등을 수거할 수 있었다. 그가 모은 5㎏가량의 폐지를 고물상에 넘겨주고 받을 수 있는 돈은 500원이 채 안됐다.
배 할아버지는 "폐지 값이 싸서 2~3시간 모아서 팔아도 편의점에서 컵라면 1개 사먹을 수 있는 돈밖에 못 번다"며 "이마저도 경쟁이 심해 매일 새벽 2~3시에 나와서 종일 폐지를 줍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서구 도마동에서 만난 손옥희(84) 할머니도 매일 새벽 4시경 유모차를 끌고 집을 나서 오전 11시까지 폐지를 줍고 귀가한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폐지를 조금이라도 더 수거하고 싶지만 온몸이 성치 않아 마음만 조급하다.
손 할머니의 방 한 칸짜리 셋집 앞에는 며칠간 모아 둔 골판지 상자와 계란판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가 폐지를 모을 때 이용하는 유모차에도 종이 상자가 한가득 실려 있었다. 손 할머니는 이렇게 모은 폐지를 이틀에 한 번 고물상에 가져가 판다. 건강한 성인이라면 고물상까지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지만 손 할머니의 굼뜬 걸음으로는 1시간 이상 소요된다.
과속방지턱이나 포장이 파인 길을 지날 때마다 유모차 위 폐지가 쏟아져 다시 담아야 했다.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차들 사이로 걷다 뒤에서 차가 와도 난청이 있어 알 수 없다. 고달픈 여정 끝에 그가 손에 쥔 돈은 300원에 불과했다.
손 할머니는 "겨울 되면 길이 얼어서 새벽에 나갈 수 없으니 지금 돌아다녀야 하는데 손가락이 잘 안 움직이고 온몸이 아파서 힘들다"며 "매달 기초연금 30만원을 받아서 월세와 식비, 병원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으니 이거라도 해야지 별 수 있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하루 10시간 이상 폐지를 줍고 다니는 박모(59·도마동) 씨는 3년 전 밤거리를 다니며 폐지를 줍다가 지나가던 택시에 치였다. 폐지가 가득 담긴 리어카를 차도에서 끌고 다니다 생긴 사고였다. 편마비를 앓고 있는 박 씨에게 크고 무거운 리어카를 차도가 아닌 인도로 끌고 다니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인도는 폭이 좁고 장애물이 많아 차도보다 힘이 배로 들어갔다.
대전시에 따르면 지역 폐지 수거인은 지난 8월 기준 362명이다. 이 가운데 341명(94.19%)은 65세 이상 노인, 80명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집계됐다.
이진기 대전 도마동 16통장은 "파지 줍는 노인들 대다수 돈 없고 몸이 아픈 사람들"이라며 "하루 종일 일해서 5000원 벌기도 힘든 상황이니 다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준 기자 juneas@cc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