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를 펼친다. 어린 왕자는 지구에 오기까지 여섯 개의 작은 별을 지나온다. 어린 왕자가 지나온 별에는 위선과 쾌락, 물질 등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산다.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어른들이다.어린왕자와 여우는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서 만나 서로에게 길들여진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엿 들으며 ‘길들임의 철학’을 알았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것이다.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는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고, 누군가를 길들이며 이어진다. 우리는 수십억 인구 중의
얼마 전 정부 고위직 지명자가 아들의 학교폭력 때문에 지명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아들이 잘난 부모의 권력을 믿고 경거망동했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뒤이어 불타는 트롯맨에서도 1위를 달리던 가수가 하차했다.누구나 다 아는 학교 폭력, 데이트폭력 등등.. 사실 여부를 가리기엔 너무 파장이 커진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날 지방에 살고 있는 초등 동창생 순이의 전화가 왔다. 예상대로 하차한 가수의 학교 폭력에 대한 성토로 흥분되어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순이는 초등 시절 내내 같은 동급생 성란이의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 트라우마가
파일, 마우스 오른쪽 클릭! 삭제, 휴지통으로 이동 .../휴지통, 마우스 오른쪽 클릭! 휴지통 비우기 클릭!/"이 항목을 완전히 삭제하시겠습니까." 컴퓨터는 중앙처리장치의 기억회로가 삭제된 용량만큼 속도가 빨라진다. 반면에 인간의 기억은 영구히 삭제가 불가능하다. 망각해버린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진의 음화처럼 의식의 심층에 있다가, 우리 삶에 불쑥 나타나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우리는 정보화시대에 산다. 그래서 인간은 뭐든지 기억하고, 답습하며, 암기하고, 숙지하려 애쓰는 일상 속에 존재한다. 때때로 냉장고 문을 열
창문 틈새로 아슴아슴하게 새벽이 열리고 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설렘이 있는 것도, 날이 새면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산적한 것도 아니건만 매번 같은 어둑새벽이면 여지없이 정신은 또렷해진다. 이른 아침부터 할 일이 그리 많지 않은데도 몸이 잠을 밀어내는 건 아마도 나이를 한 살 보탠 대가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잠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아침의 신선한 기운보다는 서글픔이 앞선다. 늙음이란 단어 앞에서 몸이 더 뻐근하고 천근만근인 듯 무겁기만 하다. 어차피 잠을 더 청해봐도 헛수고일 것 같아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거실 창의 빗장
"불이 났어요. 어서 밖으로 대피하세요."다급한 목소리로 연신 밖으로 나가라는 방송 멘트다. 지난 입춘 날 아침 청주의 한 대중사우나에서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일주일의 피로를 풀기 위해 주말 온천사우나를 즐기는 여유는 오감만족의 행복이다. 그날도 주말 아침 늦잠 대신 사우나를 찾았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죽은 세포가 살아나는 듯 즐거움에 빠져있던 시간, 안쪽에서 메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유독가스 냄새가 진동한다. 세신사 중에서 소각장 연기가 올라와서 나는 냄새라고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채 1분이 지났으려나 시커먼 연기에
식물의 즙을 빨아 먹고 사는 진딧물을 몰고 다니면서 먹이 활동을 돕는 목동개미가 있다. 겨울에는 진딧물의 알을 자기들의 집안에서 보호하고, 혹시 적에게 공격당하면 방어해 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퍼 주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목동개미가 "진딧물 꽁무니에 바짝 다가서서 더듬이로 진딧물의 배를 톡. 톡 치며 재촉하면, 진딧물은 몸에서 개미가 좋아하는 꿀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고 개미는 입으로 액체 방울을 단숨에 ‘꿀꺽’ 삼켜 버린다."책 속에서 만난 개미 이야기이다. 개미는 지구상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개체 수로 살아간다.
아이의 회동 그래한 눈가에 금세 눈물이 차오른다.호수같이 맑은 두 눈에 찰랑찰랑 차오른 눈물은 급기야 방울져 볼을 타고 내려와 뚝 떨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반짝이며 눈물을 떨구는 아이의 입가엔 환한 미소가 번진다.어린이집 하원길에 제 어미를 만난 세 살배기 손자의 모습이다. 할미가 어린이집 하원길에 늘 동행했었는데 일찍 퇴근한 제 어미를 생각지도 않게 마주하자 반갑고 기쁜 마음을 눈물로 반가움을 표한다. 형언할 수 없는 벅찬 심경을 어떤 언어로도 덧칠하지 않고 맑고 티 없이 벅찬 감정 그대로를 보여주는 손자가 할미의 눈에도 눈물을
환영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검은 토끼의 해’가 밝았다.이 시기엔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엔 자기 적성에 잘 맞는 보직을 맡게 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엔 생소한 보직을 받아 한동안 업무를 익히는 데 고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수십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터득한 진리가 있다.어떤 자리던 마음먹기에 따라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크기를 키우고, 일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야도 넓어져 있고, 큰 성과를 낼 수도 있다는 생각한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더 올라 갈수도 있고, 자신의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구조에서 퇴직 연령이 점점 빨라지고, 기성세대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 우리 사회는 청년세대도 기성세대도 여전히 아프다. 슬프게도 이 사회가 겪고 있는 이러한 아픔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세상 어느 한구석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은 삶의 축복이고 행운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이 있고, 나와 함께 할 동료가 있고, 정을 나누는 가족과 이웃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내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언젠가 영화 ‘인턴’을 본 적이 있다. 기품과
조바심이 몰려온다. 핸들을 거머쥔 손에서는 진땀까지 난다.주행 신호등이 켜졌으니 당연히 앞으로 나가야 하건만 꼼짝 못 하고 정차되어있는 이 자리가 너무 갑갑하다. 앞과 뒤, 옆까지 꽉 막힌 진퇴양난의 신세인 걸 알면서도 고개를 길게 빼고 행여나 빠져나갈 틈이 나올지 기회를 탐해본다.몇 번의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내 앞에 정차한 된 차들은 움직일 기미가 안 보인다.신호등 앞에서 몇 분의 기다림이란 왜 이리 지루한 걸까. 평소 조급한 성격도 아니건만 운전대만 잡으면 맘이 급해지고 여유가 없어지는 건 또 무슨 일인지. 급한 용무도 아닌 것
엇그제 새해를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한해를 마무리할 마지막 달도 이제는 끝자락에 와 있다. 누구나 이맘때 한번쯤은 지나간 달력도 다시 넘겨보고 한 해를 돌아보며 다가올 새해에는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새해 설계를 하는 그런 때이다. 어찌 생각하면 1년이라는 기간은 정해져 있지만 해마다 반복되는 숫자의 연속일 뿐이다. 다만 긴 여정에서 마음속으로 결산도 하고 중간평가도 하며 숨고르기를 하고 갈 뿐이다.돌아보면 한 해 동안 행복한 일, 안타까운 일 등 많은 일들이 있었다. 외적으로는 코로나19 속에서도 대선과 지방선거로 인해 정치지형과
책상 한편에 읽어야 할 책이 쌓인다. 문인들이 보내온 작품집과 출판사에서 보내온 정기구독에 각종 자료집까지 수북하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필요한지 알기에 책을 쉬어 묻어둘 수가 없다.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특별한 책을 만나는 즐거움은 흔하지 않다.갈색 표지의 ‘불경스러운 언어’란 제목이 시선을 끈다. 옛것이 좋아 어디든 수시로 떠나기를 마다치 않던 화자는 우리의 문화 예술에 관한 글을 많이 쓴다. 계간 ‘수필세계’ 주간은 화자의 필력을 믿고 지면을 무한 제공했다. 그 기간이 무려 8년이다. 작가는 이
이랬으면 참 좋겠다. 섣달은 한해의 끄트머리 달만은 진정 아니다. 희망을 준비하고 해 오름을 맞이하는 초석 달이라 이름하면 좋겠다. 애달파하지도, 회한의 눈물도 흘리지 말고 흐뭇하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한해를 매듭지었으면 좋겠다. 세파에 헐떡이며 한숨짓던 암울한 현실 속에서 비록 이루지 못한 삶의 무거운 등짐을 아직도 내려놓지 못했다 해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평안하다고 꼭 믿었으면 좋겠다. 다시오는 새해에는 희망찬 꿈을 향해 달리는 발걸음 먼저 빨라지고 매사에 감사하는 날이 많아 바빠지면 좋겠다.도전의 발상을 묶어버리던 포기와
얼마 전 주말에 시골에서 김장을 담가가지고 왔다. "이젠 1년 농사 다 지었다. 비가 오나 눈이 와도 아무걱정 없다" 봄에 씨 뿌리고 잘 키워온 알곡의 가을걷이가 끝나면 연중 마지막 행사인 김장을 하고 난 후 엄청 흐뭇해하시면서 어머니가 해마다 반복하시는 말씀이다.김장은 한해 농사의 결정체다. 무와 배추는 물론 고춧가루, 갓, 대파, 쪽파, 마늘, 생강 등은 직접 농사를 지어서 준비하고 찹쌀 죽과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서 육수를 만드느라 준비도 만만치 않다. 다만 액젓과 새우젓 정도만 시장에서 사다가 한다. 특히 새우젓은 생새우를
품위가 무엇이랴. 당의 자락이 펄럭이며 흙바람을 일으킨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도 뒤를 따른다. 흙바람을 잠재우던 비바람이 한순간 피바람으로 몰아칠 기세다. 지엄한 중전의 자리는 걸음새부터 품위를 지켜야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녀의 다급함과는 달리 왕자들은 천하태평이다.어느 부모가 자식의 일을 허투루 여기랴. 드라마는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 자식을 키우고 지켜내는 어미의 치열한 삶을 이야기한다. 왕비라 하여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민초의 어미와 다를 바 없다. 아니 어쩌면 백성의 삶보다 더 가혹하고
눈을 뜨니 작은 창가에 놓인 화병의 하얀 꽃 한 줌이 새 아침을 환히 밝히고 있다. 수확 시기를 놓친 억센 부추를 버릴까 하다 망울진 꽃대 몇 줄기가 보이길래 잠들기 전에 심심소일로 한 줌 집어 화병에 꽂았었다. 꽃이라 하기엔 너무 허접하고 가냘픈데다가 음식 재료로서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 치부했던 부추에서 이렇듯 애잔하고 오묘한 끌림이 있을 줄 진정 몰랐다. 어젯밤 화병에 꽂을 때만 해도 힘없이 축축 늘어지던 대궁이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목을 세우고 탄성처럼 꽃망울을 터트린 자태가 가히 경이롭다.멀찍이 서서 바라보다가 다가와 보니
맑고 푸른 하늘, 대지위의 만물이 성숙을 알리는 계절 완연한 가을이다. 그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던 한여름을 물리치고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을 느낄 정도이니 만추에 가까이 온 것 같다.뭐니 뭐니 해도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이른 봄에 씨를 뿌리고 더운 여름에 잘 자라도록 땀 흘리며 가꾸어 이제는 알차게 잘 영근 알곡을 거두는 기쁨을 누릴 때다. 지금은 콤바인이 대세이지만 어릴 적에는 벼를 낫으로 베어 묶어서 햇볕에 말리고 발로 구르는 옛날탈곡기에 알곡을 털어서 방아를 찧었던 기억도 새롭다. 또한 과일, 콩, 들깨 등 각종 농산
소년의 행동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의 표정을 지나칠 수 없어 행동을 주시한다. 미동도 없던 어깨가 살짝 흔들리는 듯하다. 무표정한 모습과 달리 두 손에 쥐어진 가위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 가위의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축하 무대에 오른 소년 품바가 온 신경을 붙잡는다.가을을 맞아 지역 축제가 한창이다. 혜안글방 도반의 문학공모전 수상차 옥천을 거쳐 스승님의 문학상 수상식장인 음성으로 향한다. 수상자들을 축하하고자 품바들도 출동한다. 중년 품바의 화려한 입담에 객석 이곳저곳에서 폭소가 터진다. 하지만, 젊고 앳된 품바의 ‘너
밥 한 끼 먹자는 연락이 왔다, 문학단체에서 정서를 나눈 지가 오래됐지만 특별한 친분으로 가까이해보지는 않던 터라 그의 초대가 처음엔 좀 부담이 갔다. 단체 소통 창을 밥 한 끼라 이름하여 나 외에도 두어 명을 함께 한 기별이 고마워 흔쾌히 대답했다, 밥 한 끼라는 단어 하나가 금방 아궁이에 불 지펴 가마솥에서 지어낸 밥 한 사발을 대접받은 것처럼 구수하여 쾌히 승낙하고 나니 벌써 마음이 훈훈해진다.요즘 추세로 볼 때 밥 한 끼 하자는 말은 진정성 없는 상투적 인사로 치부된다.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온 날들이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이 지나갔다. 명절하면 예나 지금이나 마음이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어릴 적에는 새 옷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다림으로 성장해서는 부모 형제자매와 보고 싶은 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기다려지기도 한다. 또 온가족이 둘러앉아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 먹으며 그동안 못다 한 얘기도 나누고 웃음꽃도 피우는 그야말로 이보다 마음이 더 풍요로울 때는 없을 것이다.이번 추석명절은 코로나19의 여파로 2년여의 거리두기 끝에 거리두기 없는 명절로 이동하는 귀성객이 많아서인지 고속도로 등 전국의 도로가 혼잡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