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책상 한편에 읽어야 할 책이 쌓인다. 문인들이 보내온 작품집과 출판사에서 보내온 정기구독에 각종 자료집까지 수북하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필요한지 알기에 책을 쉬어 묻어둘 수가 없다. 책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에 특별한 책을 만나는 즐거움은 흔하지 않다.

갈색 표지의 ‘불경스러운 언어’란 제목이 시선을 끈다. 옛것이 좋아 어디든 수시로 떠나기를 마다치 않던 화자는 우리의 문화 예술에 관한 글을 많이 쓴다. 계간 ‘수필세계’ 주간은 화자의 필력을 믿고 지면을 무한 제공했다. 그 기간이 무려 8년이다. 작가는 이덕무와 허균을 좋아하고 심노승, 김득신, 이옥 등을 연모한다. 그들은 ‘불경스러운 언어’의 글을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홍억선 수필가는 발문에 적는다. 또 ‘불경스러운 언어’는 작가를 위해 남겨진 말이고 작가가 써야 할 글이다’라고 적는다.

책장에서 선인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기갈이 들린 사람처럼 책을 읽었다니 놀랍다. 책상 한편 수북이 쌓인 책을 보며 부담을 안고 있던 나로선 얼굴이 붉어지는 대목이다. 책이 귀하던 시절 남에게 빌린 책을 읽고 또 읽고 그것도 모자라 밤을 새워 필사하였다는 이야기는 감동을 넘어 후인을 부끄럽게 하는 대목이다.

효전 심노승은 또 어떠한가. 그를 보고 ‘글쓰기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하였단다. 그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화공을 찾고자 많은 화가를 만났지만, 결과가 탐탁지 않아 그림을 그리듯 글로 묘사하기로 작정한다. 심노승의 실물을 마주한 듯 실감나는 글을 읽고 화자는 그를 연모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얼마 전에 화자가 쓴 상(象)이라는 글이 생각난다.

집안에 날아다니는 먼지를 보고 쓴 글이다. 모델하우스처럼 말끔한 집안에 무슨 먼지가 있으련만, 화자는 햇살 좋은 날 먼지의 유영을 보고 한껏 사색에 젖는다. 그 글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듯 착각이 일었다. 역시 글의 묘미는 실감 나는 묘사에 있다. 당연히 주제의 탄탄함과 문장의 간결함도 바탕이 되어야하리라. 하지만, 사실감 있게 글을 살리는 묘사가 없다면, 글의 생동감은 사라진다.

‘불경스러운 언어’는 절대 불경스럽지 않다. 작가정신을 담아 멈추지 않고 써야 할 글이다. 옛 선인의 행적과 삶을 톺아보고 작가의 연모하는 마음까지 담은 ‘불경스러운 언어’는 후인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든다. 전혀 불경스럽지 않은 ‘불경스러운 언어’를 만나는 날, 그대도 선인과 나란히 대청마루에 앉아 향기로운 차 한잔을 나누듯 평온함을 느끼리라. 나도 조선 지식인처럼 불경스러운 언어로 제대로 된 글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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