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밥 한 끼 먹자는 연락이 왔다, 문학단체에서 정서를 나눈 지가 오래됐지만 특별한 친분으로 가까이해보지는 않던 터라 그의 초대가 처음엔 좀 부담이 갔다. 단체 소통 창을 밥 한 끼라 이름하여 나 외에도 두어 명을 함께 한 기별이 고마워 흔쾌히 대답했다, 밥 한 끼라는 단어 하나가 금방 아궁이에 불 지펴 가마솥에서 지어낸 밥 한 사발을 대접받은 것처럼 구수하여 쾌히 승낙하고 나니 벌써 마음이 훈훈해진다.

요즘 추세로 볼 때 밥 한 끼 하자는 말은 진정성 없는 상투적 인사로 치부된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조차 거리두기를 하며 살아온 날들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 관계가 소원해졌고 잊히지 않을 만큼 겨우 안부 정도 물으며 지냈다, 언제 밥 한 끼 먹자는 신기루 같은 약속을 허공에 던지는 것으로 대화의 마무리를 하던 사람이 바로 나였지 않던가.

언제라는 알 수 없고 막연한 시제(時制)를 붙이는 건 아니함만 못한 약속이거늘 입에 꿀 바른 듯 남발하던 그 말이 그의 진정한 마음을 전해 받고 나니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얼마 전 우스갯소리라며 지인이 보내온 글귀가 생각난다.

하루 한 끼도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 남편을 일컬어 사랑스러운 영식씨, 하루 한 끼 먹는 귀여운 일식씨, 두 끼 먹는 남편은 두식씨, 세 끼 다 먹는 남편은 삼시쉐끼란다. 그 이후로 간식부터 야식까지 챙겨 먹는 남편을 향한 이름은 너무 외설스럽고 급기야 상스럽기까지 해 깔깔 웃었지만 글로 옮겨놓진 못하겠다.

당연한 일상중 하나인 한 끼니를 가장 가까운 남편에게 이렇게 뼛골 때리듯 독한 화살로 만들어 아내들은 왜 쏘아댈까.

호구지책이란 무거운 삶의 등짐을 두 어깨에 짊어지고 청춘을 보낸 후 늘그막에 겨우 안주하나 했더니 밥 한 끼를 두고 또 화살을 맞는 남편들의 측은하고 서글픈 얼굴이 그려진다,

아내는 밥 한 끼 차려내는 노동의 고단함만으로 이토록 거칠게 토로했을까, 여자라는 이유로 지난날 겪은 하대나 차별로 뭉겨진 자존감을 이제야 밥 한 끼로 치부하여 쏟아놓는 아낙들의 웃픈 이야기지만 남자들도 한 번쯤은 되짚어 자신들의 지난날을 돌아봄도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현시대 젊은 세대들은 맞벌이가 대다수라 남녀 구별하지 않고 가사를 평등하게 분담하고 있으니 이런 글귀가 이해할 수도 없고 가당치나 하겠냐만.

한 끼라도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허물없이 가까이서 마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를 마시는 것도 아닌, 한 끼 밥을 같은 상에서 먹는다는 건 그만큼 서로의 관계가 허물없고 편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진정 아니다,

밥 한 끼 하자는 그의 초대로 무미건조해졌던 감정에 생기가 돌고 만남의 장소가 가까워져 올수록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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